나도 그럴 때가 있었는데.

나는 여전히 어린애처럼 좌충우돌하며 산다

by 이양고

10살 때는 20살이 되면, 20살 때는 30살이 되면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30살이 넘은 지금도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고, 여전히 어린애처럼 좌충우돌하며 산다. 네 가지 삼각김밥 중에서 어떤 맛을 고를까 고민하고, 야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야식을 먹는다. 몸만 커졌을 뿐, 몸에 두르는 것을 내가 번 돈으로 살 뿐, 마음과 생각은 15년 전 그대로다. 그런데 자꾸자꾸 무언가를 해내야만 해서 난감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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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아직 18살 고등학생 같은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문득 지나가는 계절이 아쉬울 때, 길가에 핀 꽃이 어여쁠 때, 겨울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에 마음이 아릴 때 그렇다. 어렸을 때는 연말이면 언제쯤 내가 번 돈으로 맛있는 걸 사 먹을 수 있을지 손꼽아가며 기다렸던 것 같은데, 돈을 벌어도 맛있는 건 마음대로 사 먹을 수 없고 그저 한 해가 흘러가는 길목 앞에서 마음만 아프다.


10대는 10km로, 20대는 20km로 시간이 흐른다던데, 30대가 된 지금은 30km로 시간이 흐르는 듯 피부에 와닿는 시간의 속도가 문득문득 날카롭다.





반쯤 어른이 된 증거들

이런 내가 어쩌면 반 정도는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들을 볼 때 종종 그렇다. 실수를 하는 것에 화가 치미는 것이 아니라 '그럴 때도 있었지, 그런 날도 있었지' 하며 보듬어주고 싶을 때,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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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실수를 하고 큰일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는 신입사원을 볼 때 생각한다. '몇 년 전 내 모습이 저랬겠구나' 하고. 그다지 큰 실수도 아니고, 내가 저지른 실수로 회사가 발칵 뒤집힐 만큼 큰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저지른 실수 앞에서 안달복달했었다. 경험하지 못했기에 내 실수로 올 결과를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 회사를 다닌 지 어느덧 4년 차. 갓 입사한 신입사원을 마주하면 '나도 저랬을까' 싶은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이 들면 몇 년 전 신입사원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는 회사에 폐를 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다녔고, 아파도 아픈 내색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일에 간절했다.

식은땀이 뻘뻘 나는데도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는 집념 하나로 회사에 출근했다. 회의에 집중하지 못하고 어지러운 머리에 자꾸 고개를 숙이자 팀장님이 "회의 끝내고 얼른 집에 가보라"며 등을 떠밀었다. 내가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데도 미련하게 버텼다. 어찌 보면 순수함이었고, 어찌 보면 미련함이었다.




시간이 새겨준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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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어린애 같은 면모가 있는 나지만, 흘러간 시간은 내 피부에 새겨져 없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 존재한다. '어른들은 왜 저래?' 하며 '나는 다른 어른이 될 거야' 생각했던 것들이 어렸기 때문에 가능한 치기 어린 생각이라는 것도 알고, '나는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것도 어른의 삶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안다. 내가 생각한 좋은 어른들의 모습이란 무던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모임을 운영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회사 생활보다 좀 더 사적이고, 좀 더 솔직한 모임 활동 안에서 회사만 다녔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것 같은 좋은 사람도 만났고,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 싶은 사람도 만났고, 앞뒤가 다른 사람도 만났고, 너무 솔직한 사람들도 만났다.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좋은 어른이란 쉽지 않음을 느낀다. 회사에서 관리자 위치에 있는 한 모임원이 "회사에서 자꾸 화를 내서 속상하다. 매번 화를 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회사만 가면 자꾸 화가 난다"는 말을 들을 때면, 모임에서는 저렇게 점잖은 사람이 회사에서는 다른 모습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평면적이지 않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되고, 나 또한 회사에서와 모임에서의 모습이 다를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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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없는 삶 속에서

삶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정답이 있다고 해서 그 정답만 골라 살 수 있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모두 좌충우돌을 겪으며 조금씩 깎여나가고, 깎여나가다 보면 빛을 발하는 게 아닐까.

나는 여전히 아직도 충분히 어른이 되지 못해 자주 아프고 자주 슬프며 성장통을 겪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러지지는 않는다. 어른이란 건 내가 한 선택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하고,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내가 책임져야 할 수많은 것들을 안아주려면 쓰러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처음 이 글을 쓸 때는 많은 사람 중 한 명이라도 내 글을 읽고 힘을 얻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삶의 군상은 다양하니까, 그중에 한두 명 정도는 나와 비슷한 생각, 일상을 살아내고 있지 않을까 해서. 하지만 글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 사실 가장 많이 힘을 얻은 건 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저 마음속으로 품고만 있던 생각들을 꺼내 먼지를 털고 물로 씻고 고이 접어 글로써 정리하는 과정에서 힘을 얻었고, 내가 작성했던 글을 고치고 다듬는 과정에서 또 힘을 얻었다.


부디, 오늘 하루도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평안히 살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 고민 없이 잠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긴긴 밤이 길어지지 않도록 허리를 끊어내어 이불 접듯 탁탁 접어 수납함에 넣어둘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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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안한 만큼 당신들도 평안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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