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를 되돌아 보는 일
오늘도 정성스런 조식으로 시작하는 아침.
계란 후라이와 카레, 미역줄기볶음, 깍두기와 파김치, 콩나물국까지.
어젯밤엔 잠을 설쳐서 밥을 먹으면서도 무슨 맛인지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든 음식에 정성의 맛이 느껴졌다는 것.
적당하게 배부를만큼 음식을 접시에 덜곤,
옆방 친구와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식사한다.
어젯밤 잠은 잘 잤는지,
아카이빙은 잘 준비되어 가는지,
며칠 후 있을 축제에 참가할 건지 물어보는 일상적인 대화다.
회사 다닐 땐 스몰토크라고는
날씨 얘기와 어젯밤 이슈,
프로젝트나 성과에 대한 것이 전부였는데
한달살기로 묶인 우리는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때론 며칠 후 있을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때론 아카아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꼭 해야 할 숙제이면서도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건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어쩌면 모든 것은 다 생각으로부터 비롯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즐거운도, 괴로움도.
매일 조식을 먹을 때마다 마주하는 풍경이지만
늘 어여쁘다.
초록잎이 만들어내는 싱그러움은 여름에 특히 잘 느껴지는 아름다움이니까.
순천으로 와 이 싱그러움을 매일같이 마주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니.
아무래도 올 여름은 축복 받은 계절인가보다.
오늘의 첫번째 일정은
모정쌈밥 집에서 점심을 먹는 일.
아침을 먹은 기억이 휘발되기라도 한 것처럼 출출하다.
아침을 먹은 기억이 없게 출출하다는 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점심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니까.
우리가 먹은 건 돼지숯불고기 쌈밥.
산더미 같이 나온 숯불고기가 어찌나 맛있던지
정신을 놓고 한 그릇을 해치웠다.
불향이 진하게 나는 숯불 고기도 맛있었지만
쌈밥답게 다양한 쌈 채소가 나와 곁들일 수 있어 더욱 좋았고,
무생채나 가지무침 같이 다양한 반찬과 함께 먹을 수 있어 더욱 만족스러운 점심이었다.
점심을 먹고 도보로 5분 정도 소요되는 다음 장소로 이동.
차에 타고 이동할 때 약간의 소나기가 내렸는데 다행스럽게 이동할 때는 비가 온 지도 모르게 그쳐있었다.
(마지막 사진은 이번 멤버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오라버니의 양말인데
포테토칩 그림이 귀여워서 찍어보았다.)
다음 일정은 '순천올랑가' 루미네 오락실.
이름만 들어서는 게임을 할 수 있는 평범한 오락실 같이 보이지만
중앙동에서 구매한 영수증을 가지고 오면 코인으로 바꿔주고
그 코인으로 사격 게임이나 인형뽑기 등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루미네 오락실은 원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한 공간으로,
오락실, 쉼터, 팝업스토어, 만남의장소 등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며 조성했다고 한다.
출처 : 핀포인트뉴스(https://www.pinpointnews.co.kr)
시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답게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었고,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에어컨도 빵빵하게 틀어둔 상태였다.
순천 관련 굿즈도 판매 중이니 관심이 있다면 눈여겨 보시길.
시민들을 위해 만들어둔 공간에 우리가 온 건,
"가치관 검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참고로 이건 우리가 모정쌈밥에서 식사한 영수증을 보여드리고 얻은 코인인데,
이 코인을 통해서 사격게임이나 인형뽑기를 할 수 있으니 순천 중앙동에 볼 일이 있으신 분들은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적극 활용하셨으면 좋겠다.
코인은 잠시 뒤로 밀어두고,
가치관 검사를 하기 위해 테이블을 모아서 앉았다.
벌써 5일 가량 마주하는 얼굴인데도 이렇게 각을 잡고 앉으면 괜히 쑥쓰러워진다.
강사님께서는 본인 소개를 간단히 하시며
우리 모두의 소개를 듣고 싶어 하셨다.
본인 소개는 이름과 나이,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는 본인 특성과
조심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하셨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한달살기 초반에 이야기를 나누면 앞으로 서로를 이해하기 훨씬 더 편할거라고 말씀하시며.
자기 소개가 시작되고, 대부분의 멤버들이 본인 성격이 무던해서 신경쓸 것이 없다고 하셨지만
나는 잠귀가 밝아 잠을 자주 설치고 무례한 것을 싫어한다고 밝혔다.
3년 가까이 모임을 운영하며
수 많은 사람에게 내 소개를 해왔지만
한달동안 매일 같이 얼굴을 마주할 사람들에게
다시금 새삼스럽게 자기 소개를 하고 있자니
괜히 쑥쓰러워져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회사를 다닐 땐 내가 누구인지, 뭘 싫어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무슨 파트 담당인지,
무슨 성과를 냈는지 정도만 서로 알면 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한 회사 동료들이
싫어했던 것, 좋아했던 것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했던 일들만 생각난다.
분명 동료애로 끈끈했던 시간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점점 흐릿해질 것을 생각하니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한달살기가 끝나면 커피라도 한잔 하자고 해야겠다.
자기 소개 이후에는 가치관 카드 검사를 본인 앞에 나열하고 왜 그 카드를 골랐는지 설명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누군가는 가족을 1위로 정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안전 및 건강으로 결정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정직과 성실을 1위로 정했다.
같은 공간에 모여있는데도 이토록 다를 수가 있다니.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더라도
말하지 않으면 모를 다양한 가치관을 나눌 수 있어 뜻깊었다.
뺏고 뺏기기도 하며,
또 어떤 카드는 방어 카드를 써 막기도 하며 지켜낸 카드들.
처음에는 11장으로 시작했던 가치관들이
가장 중요한 5장으로 정하고 나니 내게 남은 카드는
- 자기주도성
- 일에 대한 만족
- 합리적 보상
- 평화와 공존
- 실용성
정도였다.
본인의 가치관을 눈으로 확인한다는 게 얼마나 낯선 경험인지.
다양한 카드 중에서 내가 '자기주도성'을 이토록 크게 생각한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자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아, 그래서 내가
누군가 억지로 시키는
마음에도 없는 일을 할 때 가장 힘들어했었나?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했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내가 생각하지 못한 내 가치관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특히 좋았다.
그 다음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에게 짧은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타인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오랜만이라 뭐라 써야 좋을까 고민하다가
같은 방을 쓰는 룸메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자고 마음을 먹고 빼곡하게 써내려갔다.
고마운 것들을 하나씩 열심히 쓰고 있는데,
해외에서 오래 생활했던 분이 랜덤으로 카드를 뽑아가지라며 선물해주셨다.
내가 뽑은 것은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돼! 쉬어가도 괜찮아"
지금 내 상황에 딱 필요한 내용이라 마음에 쏙 드는 문장이었다.
가치관 검사가 끝난 뒤엔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끼리 짧은 편지를 주고 받았다.
빠른 시간 내에 써야해서 내가 뭐라고 썼는지
구체적으로 기억나진 않았지만
고맙다는 말을 가장 많이 썼던 것 같다.
한달이 끝난 후 쓰게 될 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쓰일까.
오늘 썼던 편지와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겠지.
편지까지 쓰고 나서는
나눠받은 코인으로 인형뽑기도 하고
사격게임도 하면서 오늘 일정을 마무리 했다.
이 친구는 순천시 마스코트 '루미'
순천시 마스코트가 흑두루미인 이유는.
순천시의 마스코트로 순천시의 시조이자 천연기념물 제228호인 “흑두루미”와 세계 5대 연안습지에 속하면서 천혜의 생태자원인 순천만습지의 “짱뚱어”를 캐릭터로 표현하여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도시의 이미지를 담고자 했으며, 마스코트의 이름은 “루미와 뚱이”이다.
https://www.suncheon.go.kr/kr/info/0003/0001/0005/
오늘의 일정은 좀 일찍 끝이 나서,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노트북을 챙겨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한달살기 하러 오면서 프로그램이 아닌 나머지 시간에는 뭘 하고 지낼까?
생각하며 설렜었는데
다들 목표한 바가 있으니까 허투루 보내지 않게 되는 모양이다.
그들 속에서 나도 열심히 글을 썼다.
순천에 오고 난 이후 브런치에 쓰고 싶은 말이 많아져서 큰일이다.
느끼는 바가 많아서, 그리고 그게 너무 생생해서
자꾸 글이 길어진다.
우리의 저녁은 수제 햄버거집 '버거 포레스트'였다.
룸메가 협찬을 받은 곳이라 저녁을 먹으러 간다고 해서
같이 가자고 말하고 따라 나선 참이었다.
룸메는 다양한 곳에서 협찬을 받는다고 하여
블로그를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이웃수와 방문수가 어마어마했다.
내가 이웃수를 보고 놀라며 대단하다고 말했더니
손사레를 치며 절대 대단한 게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회사 밖으로 나오니까 여실히 느껴지는 것이 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며 대단한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뭘 하든 좀 더 겸손한 마음으로
타인을 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룸메는 협찬을 받는 건 어렵지 않으니
언니도 해보라며 이것저것 알려주었는데,
마케터로 일해보니
본인이 해보니 좋은 것들을
남에게 대가 없이 알려준다는 게
얼마나 귀중한 건지 잘 알게 되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알려주는
룸메의 마음이 무척 고마웠다.
버거포레스트는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들이 많았다.
수제 버거집이라고 하면
괜히 비쌀 것 같아서 발길이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인데,
여기는 생각보다 인테리어가 소탈하고
가격대도 가성비가 있어서
부담스럽지 않게 한끼를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먹음직스러운 버거의 모습.
패티도 패티인데 빵이 맛있었고,
많이 기름지지도 않은 모양인지
햄버거를 먹고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았다.
햄버거를 맛있게 먹고는 근처 공원을 한바퀴 돌았다.
예전에 본가에 살 땐 장마철이면 자주 보던 두꺼비도 보고,
공원에서 다 함께 춤을 추며 운동하는 이들도 보았다.
오늘 내가 일을 했고, 내일 출근을 해야 한다면
그 무얼 봐도 감흥이 없었을 시간대이지만
나는 내일도 일을 하지 않는다.
고작 그 사실 하나가 내 마음을 이토록 가볍게 만든다.
공원에 서서 열심히 운동하는 그들이 신나 보였던 건
사실 그들을 보는 내 마음이 신났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노트북을 챙겨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는 여전히 본인의 할일을 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옆방 친구가 아끼는 거라며 준 비타민 c에 마음이 따뜻해지며 오늘 하루도 잘 지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