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한달살기 in 장천 (5)

5. 백수라는 건 월요일이 걱정되지 않는 일요일 저녁의 밤을 가진다는 것

by 이양고


오늘도 조식으로 시작하는 아침.

주말 동안 조식 먹을 인원을 조사하는 투표가 올라와 먹겠다고 신청을 했기에

동생을 방에 두고 1층으로 내려왔다.


전날과 비슷한 조식을 먹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사장님께서 오늘은 사람이 별로 없으니 동생의 몫까지 함께 챙겨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덕분에 나만 먹기 미안한 예쁘고 정갈한 아침을

동생과 함께 먹을 수 있어 기뻤다.



방으로 돌아와 돌돌이로 간단히 청소를 하는데,

동생은 방을 무료로 쓴 게 감사하다며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던

쓰레기통을 비우고 분리수거 해 1층으로 갖다놓았다.


비워주기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버리지 않아

꽉 차있던 쓰레기통이 비워지자 마음까지 홀가분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침을 먹었으니 카페로 바로 가면 되겠다던 계획과는 달리 간단한 청소를 하고 몸을 움직이니 출출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희주님께 추천 받은 '장대콩국수'로 목적지를 정했다.


맛집은 맛집인 모양인지 테이블에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꽉 차 있었다.


우리는 운이 좋다며 빈자리를 찾아 얼른 앉았는데,

알고보니 콩국수를 후루룩 먹고 일어나는 어른들이 많아 회전율이 좋은 편이었다.




메뉴는 단 두 개.

냉콩국수와 냉콩물이다.

자리에 앉으면 사장님께서 "2개 드려요?" 물어보시는데 대답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시원하고 걸죽한 콩국수가 테이블에 놓인다.



콩물 포장도 되는데 유효기간은 1일이며

포장용기 1,000원이 추가된 비용을 내야한다.



진하고 걸죽한 콩국수 위에 올라가 있는 소금 한 스푼.

잘 섞어서 먹으면 된다.


(오른쪽 사진은 콩국수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창밖을 보는데 파란색 다리와 표지만이 예뻐서 찍어본 것이다)




콩국수를 먹는 사람은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설탕을 넣어먹는 파와, 소금을 넣어먹는 파.

나는 소금파라 짭쪼름한 맛이 느껴지도록 소금을 넣어 먹는 걸 좋아하는데

테이블에는 설탕만 놓여있어서 아쉬웠다.


설탕을 약간 뿌려 달짝지근하게 만든 다음

같이 나온 깍두기와 먹으니 소금파의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날씨가 완벽하다.

폭발하는 구름과 초록잎들을 보고 있으니 가만히 하늘만 보고 있어도 좋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동생은 잠시 후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말은 즉,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는 뜻이었다.

동생과 함께 다리를 건너 '밀림슈퍼'로 향했다.




밀크티가 맛있기로 소문난 밀림슈퍼는 인테리어가 앤틱해서 좋았다.



자개장과 꽃무늬 벽지,

각양각색이지만 어우러지는 엽서들이

불협화음 같아서 더 잘 어울렸다.


취향이 제멋대로인 엄마가 예쁘다며 이것저것 사 모은 느낌이랄까.



그 제멋대로인 취향이 어우러지니

모든 인테리어들이 나 좀 봐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았고,

시선이 가기 무섭게 사진을 찍어대느라

빙글빙글 어지러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1층도 충분히 예뻤지만 2층은 탁 트인 공간과

커다란 자개장이 있어 분위기를 압도한다.



1층에서처럼 2층 또한 화려한 꽃무늬 커튼으로 시선을 사로잡고, 나무 테이블과 나무 의자로 닿이는 시선은 눈을 편하게 만든다.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동생은

여기저기 각도를 바꿔가며 바쁘게 밀림슈퍼를 사진에 담아댔고,

나 역시 나만의 방식으로 인테리어를 눈과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윽고 나온 밀크티.

동생이 이렇게 찍으면 예쁘다며 창틀에 밀크티를 올려 구도를 잡아주었다.

초록색 배경과도, 하늘색 배경과도 잘 어울리는 게

확실히 매력적인 구도였다.



우리가 주문한 건 밀크티와 아메리카노, 바질 잠봉 소금빵.

배가 부르다면서도 빵 배는 따로 있다는 동생의 말에 주문한 빵이었는데

생각보다 기름이 많았지만 바질과 잠봉이 잘 어울러져 음료와 먹기 좋았다.



14시에 버스를 타러 가야 하는 동생을 데려다 주기 위해 이야기를 오래 나눌 새도 없이 얼른 몸을 일으켰다.


동생은 어제도 충분히 즐겼고 오늘도 맛있는 걸 많이 먹어 충분하다고 말하면서도

이대로 먼저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운지 조만간 다시 와야겠다며 다짐 아닌 약속을 해댔다.




동생을 터미널에 보내주고 나니

일정 없는 일요일 오후가 훅 다가왔다.



mbti 검사를 여러 번 해도 늘 ENFJ가 나오지만

j와 p가 반반인 나는 동생이 떠난 이후 뭘 해야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다.


우선.. 글을 쓰자! 이번 순천 한달 살기 목표는 글을 많이 쓰는 것이었으니까.





글을 쓰기 위해 스테이두루 1층에 앉아 있으니 이런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웬만한 카페 못지 않은 뷰와 채광이다.

물 한 잔 마시며 이런 광경을 보며 글을 쓰는 삶이라니.

완벽한 주말 오후라고 생각했다.



정신없이 2시간 가량을 글을 쓰다 시계를 보니 1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끼니를 놓치면 야식을 먹게 된다.

야식을 피하려면 제때 저녁을 먹는 게 중요하기에

김밥집을 찾아 길을 나서기로 했다.


노트북을 방에 가져다 놓고 지갑 하나만 달랑 챙겨서 출입문을 열었는데,

옆집 미용실 몽이가 주인과 함께 얌전히 앉아있었다.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기로는 나이를 먹은 뒤 털이 잘 안 자란다고 하는데

내 눈엔 여전히 애기 강아지 같았고, 저 얌전한 두 팔이 너무 귀여웠다.


몽이야, 오래 건강하게 행복하렴.



김밥집으로 가는 짧은 길에 얼마나 많은 셔터를 눌러댔는지.

그저 지나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풍경도

여행자의 마음이 되면 귀하게 여길 수 있게 된다.


오늘과 내일이 같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언제까지 반복될 일상이 아님을 알기에.




목적은 '김밥 구매하기'

목적지는 '온누리 상품권'으로 구매할 수 있는 김밥집이었다.


룸메가 온누리 상품권을 이용하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

10만원이나 덜컥 구매했는데 근처에 사용처가 많지 않아 아직 1천원도 사용하지 못한 채로 있다.


하지만 한 달 동안 10만원은 어떻게든 쓸 것 같아서 후회 하지는 않기로 했다.



열었겠지? 문 닫은 건 아니겠지? 생각하며

네이버로 휴무날도 검색한 뒤 출발했지만

문이 닫혀있었다...


김밥집으로 가는 동안 문을 닫은 가게들이 몇몇 보였는데, 내가 목적지로 정한 김밥집 또한 문을 닫았을 줄이야...


하지만 오늘은 일요일 저녁이고, 내겐 아직 시간이 많으니 순천을 떠나기 전까지는 꼭 다시 한 번은 방문하리라 다짐했다.


서운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리는데 치킨집 가격이

감사, 사랑, 희망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풀렸다.


이런 작은 문구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고, 마음을 달랜다. 금액이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아도 시선을 사로 잡았으니 치킨이나 먹을까? 생각했다가 금방 마음을 접었다.


튀긴 음식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할 뿐더러

혼자서 한 마리를 다 처리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히 해결하곤

발걸음을 돌렸다.


목적한 바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아무렴 괜찮았다.


날씨는 화창했고 구름은 폭발하고 있으니까.

내게는 시간이 아주 많고, 편의점에서 먹은 김밥도 맛있었으니까.


회사를 다닐 땐 매주 일요일 저녁만 되면 우울했다.

아니, 사실 일요일 오전에 눈을 뜨면서부터 기분이 나빠졌다.


내일은 출근하면 그 프로젝트의 기반을 준비해야 하고,

저번 주 회의에서 나온 안건을 미리 검토해야 하며,

kpi를 기입하고 목요일에 있을 주간 회의에서 사용할 보고서 쓸 준비도 해야했다.


내일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이미 회사에 있는 것처럼 불편했고,

그런 불편한 마음으로 오후까지 지나다 보면

저녁이 되어 부지런히 흐르는 시간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 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내겐 출근할 회사가 없었고,

내일은 가치관 검사라는 일정이 예정된 날이었다.


월요일 아침이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은 채로,

일요일 저녁이 조금도 속상하지 않은 채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완벽한 주말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