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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a Mar 04. 2021

「차카타파의 열망으로」 by 배명훈

번역이 불가능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다들 별로 안 믿는 모양이지만, 우리 학교 역사학과 격리실습실은 학생들을 감금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 아니다."

가장 최근에 읽은 한국문학 작품 중 하나는 문학과지성사에서 내놓은 SF앤솔러지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라는 단편 모음집이었다. SF를 딱히 즐겨보지는 않지만, 최근 한국에서는 엄청나게 떠오르는 장르라서, 그리고 팬데믹의 상황에서 읽게 되는 팬데믹 관련 이야기들이라서 읽어보기로 했다.


다른 단편들도 재미있었다.


여섯 개의 단편은 각자 다 색깔이 다른데, 그중에 제일 재밌게 읽었던 단편이 배명훈 작가님의 차카타파의 열망으로였다. 읽는 내내 한영 번역가로서의 뇌신경을 미친 듯이 곤두세우게 하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원문의 첫 문단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여 그냥 보이는 대로 번역해봤다.


No one really seems to believe this, but the quarantine lab in the school's history department building was not built to incarcerate students.



헌데... 두 번째 문단부터 점점 소설의 본색이 드러난다.


"도서관저럼" "근대사 아가이브" "날자를 일괄적으로 득정할 수 없는"을 읽어나가면서, 어랏, 윤문을 제대로 안 했나? 싶었는데, 아뿔싸. 제목을 보고 눈치를 챘어야 했다. 2020년 "고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병을 겪고 비말을 두려워하게 된 2113년의 한국은 ㅊㅋㅍㅌ등 발음할 때 침이 튀기는 격음과 경음이 사라진 사회였던 것이다.


옛날 사람들의 세련되지 못한 모습 때문에 영상을 보기 꺼려하던 화자는 2008년 야구경기 중 누군가 "짐"을 "밷"는 것을 보고 놀라며 2020년 공연을 보다 배우의 입에서 나오는 "안개 갇기도 하고 비 갇기도 한" 침을 보며 "드래곤인가?"라고 생각한다.


첫 문장을 영어로 번역해 보려 했는데, 어느새 다시 스토리에 집중해버렸다.

여하튼, 격음 없이 번역을... 할 수가 있나? 뭔가 처음부터 애매한 소설을 골라버리니 것 같다 ㅠㅜ


"No one really seems do believe dis, bud de guarandine lab in the sgool's isdory debardmend building was nod build do incarcerade sdudends."


이런 첫 문장을 보면 궁금해서 읽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은 짜증 날 것 같기도 하다. 오히려 영어로는 오디오북으로 만들면 재밌지 않을까?


어느새 격음 없이 쓰인 글을 읽다 보니 익숙해져 버린 것도 웃기고, 작가님의 기발한 상상력도 재밌어서 단숨이 끝내버린 소설. 하지만 각색이라면 또 모를까, 영어로 번역은... 불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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