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했지만 머물 수 없는
눈 내리지 않는 성탄절
나와 나타샤는 만났다
나타샤의 하얀 얼굴은 밤을 밝혔고
눈 대신 눈이 내게 내려앉아서
나는 눈에 흠뻑 젖었지만
눈이 녹듯이
어느 날 나타샤도 눈을 거두었다
밤이 물러간 아침
나와 아사코는 만났다
아사코의 입술은 아침 햇살보다 따뜻했고
내 뺨은 이미 해가 진 저녁노을처럼 붉어져서
온 마음은 불바다가 되었지만
해가 지면 밤이 되듯이
어느 날 아사코도 저물었다
소나기가 내리는 날
나와 소녀는 만났다
소녀의 어깨는 빗줄기를 감쌌고
어깨를 품은 내 가슴에
비를 머금고 꽃이 피었지만
꽃잎이 떨어진 낯선 꽃처럼
어느 날 소녀는 멀어졌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피천득의 「인연」, 황순원의 「소나기」 속 너는 나의 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