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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Jul 27. 2020

더 나은 인생을 살고 싶은 당신에게

[단편에세이] 조급함을 다스려야 뭐든 가능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항상 뭔가 하기 바빴다. 분명 공부든 놀이든 취미든 하고 있는데도 불안하고 뭔가 더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런 마음들은 휴식이 필요한 나에게 채찍질을 해댔고 쉴틈 없이 달려가게 했다.

어쩌면 지금 생각했을 때 당시 삶에 만족을 못하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고,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가진건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나를 괴롭히는 것 밖엔 없었다. 사람들이 봤을 땐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하고 부지런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재다능하고, 활력이 넘쳐 무슨 일이든 잘할 수 있는 욕심 있는 멋진 아이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20년이 넘게 내가 그런 완벽하거나 혹은 멋진 사람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다. 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내 임계점 돌파하기 위해 나를 더 채찍질하면 더 좋은 사람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우울증, 불안장애와 공황장애까지 겹쳐서 발병했다. 갑작스러운 증상에 놀라 병원에 찾아 정밀검사를 했는데 단시간 내에 생긴 것이 아닌 장기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축적되어 왔던 스트레스가 폭발한 것이라고 했다. 담당의는 모든 사람의 스트레스 폭발 지점은 10이고 다른 사람의 스트레스 한계점이 0에서 시작한다면, 나는 8~9에서 시작하니 작은 충격과 자극에도 금방 폭발 지점에 도달해 불안 증상이 쉽게 올라온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우울증 지수 최상위권을 차지한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상위권 차지할 게 없어서 그딴 거나 차지하고 있다니. 우울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분명 씁쓸하고 슬픈데 웃음이 나온다니 알 수 없는 반응이었다.


1~2년 간 약을 복용하면서 치료하려고 애썼지만 증상은 더 심해지고 발작이 잦아졌다. 일하다가도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으면 실신하고 자살충동도 심해져서 행동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탈모도 오고 체중이 더 늘어났으며 알코올 의존도가 점점 높아졌다. '도대체 낫기 위해서 약을 먹었는데 왜 더 망가지는 기분인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약을 안 먹으면 자꾸 불안이 올라와서 더욱 약에 의존해갔다.

어딜 가든 약을 항상 지니고 다니고, 증상이 올라올 때마다 식후 먹는 약 외로 증상이 완화되는 약을 추가적으로 먹었다. 먹다 보니 먹는 약의 총량이 갈수록 늘었다.


ⓒPixabay


 그러던 어느 날 게으름인지 지겨움인지 모르겠는 마음으로 병원을 안 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위기에 대한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담당의가 분명 약을 중단에 끊으면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만하고 싶었다. 그리고 약이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어설픈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이 상황은 사실 처음부터 반복됐었다.

꾸준히, 부지런하게 약 먹는 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었던 나는,

약을 중단해서 증상이 심해지고 담당의한테 혼나는 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어설픈 확신이 기존의 귀차니즘에 의한 약 중단과 다르다는 것을 직감했다.

정말 약이 없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 이유는 내가 내 감정을 직면할 작은 용기가 났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울감과 불안감에 휩싸여 나를 채찍질하기 바빴던 이전 날들과 달리,

스스로 "뭐 어때?"라는 주문을 걸고 있었다.

내 감정이 지금 기쁘고, 슬프고, 아프고, 화나는데 이런 원초적인 감정들도 묻어두고 견뎌내야만

내가 더 나은 사람이고 성장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착각이 산산조각 났다.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괜찮다고, 그 어떤 것을 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굳이 애쓰며 무엇을 하지 않아도 존재한다는 자체가 존귀하다는 걸 마음에 새겼다.


넌 지금 합리화를 하는 거야.
일어설 자신이 없으니 주저앉고 뭐 어떠냐고, 괜찮다고 루저의 합리화를 반복하는 거지.
주저앉아 있는 너는 '루저'야.
네가 원하는 다른 삶은 살 수 없어.


예전이라면 이렇게 스스로 되뇌며 채찍질했을 것이다.

그런데 일어서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단 걸,

어느 때는 주저앉아 쉴 필요도 있다는 걸 깨닫고 조급함이 내려갔다.

물론 일어서지 않는다면 그 선택에 맞는 미래가 주어질 것.


하지만 평생 주저앉아만 있을까?


인간의 내면엔 분명 성취와 성장의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렇기에 앉은 채로만 머물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뒤처짐에 대한 조급함 때문에 시작하지도 못하는 것 아닐까?

주저앉아 있는 시간이 내가 꿈꾸는 미래를 조금 더 늦게 마주하도록 만들 수도 있지만,

쉴 틈 없이 달려가다 부서져 결승점에 도달하지도 못하는 것보단 백배 천배 낫다.



조급함을 달래야 뭐든 가능하다.

조급함을 달래는 방법은 '천천히 가도 괜찮아'라고 나 스스로를 다독여 주는 것.

내 감정을 직면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

기쁜 감정이 있을 땐 충분히 그 기쁨에 동참하고, 아픈 감정이 있을 땐 충분히 그 감정을 애도하는 것.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찐'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충분한 공감을 해주지 못한다.

무언가를 해야만, 되어야만 인정받는 이 시대에서 보이지 않는 감정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사치일 뿐.

현실에서의 생존을 위해 본인의 내면을 보듬어주길 포기한다.



ⓒPixabay



물은 수년에 걸쳐 한 방울 한 방울 끊임없이 떨어지면서 돌을 마모시킨다.
만일 그 모든 물을 돌 위에 한꺼번에 쏟는다면,
물은 돌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흘러내릴 것이다.                          
                                                                                                                               이스라엘 살란터



내면 속을 감싸고 있는 실패감과 불안함, 그로 인한 조급함은 성취를 통한 자신감과 확신으로 극복할 수 있다.

내 인생의 페이스 메이커는 나다.

그 누구도 나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으며, 완급조절의 주체는 나 자신이다. 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충분히 나의 감정을 공감하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언제 마음의 가시밭에 걸려 넘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많은 양의 물이 아니라 수년에 걸쳐 떨어진 한 방울의 물들이 돌을 마모시킬 수 있다는 살란터의 명언처럼, 우리의 인생에서 이뤄가는 작은 성취들이 모여야만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은 보통 큰 성취를 이뤄내야 뭔가 한 것 같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결단코 큰 성취는 작은 성취가 모여야만 이뤄낼 수 있으며, 조급함은 독과도 같다.

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시간이 있다. 우리의 삶의 시간 중 채워가야 할 각자에게 맞는 할당량이 있다.

충분히 받아야 할 사랑도 있고 이겨내야 하는 아픔도 있으며, 느리게 걷는 순간도 필요하고 그 시간을 통해 빠르게 달리는 시간도 생길 수 있다. 물론 이 할당량은 각자에게 '감당 가능한 만큼'만 주어진다.

이 과정을 건너뛰고 무언갈 하려고 한다면 조급함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의 시간을 존중해줘야 한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틀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을 떨쳐버리고,

지긋이 그 길의 촉감과 향기, 느낌을 음미하며 걷는 자만이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하고 싶다.



그대가 걷는 그 길은 그대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풍경을 감상하고,

새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즐기고,

푸릇푸릇한 잔디의 촉감을 느끼며,

향긋한 풀내음을 맡기를.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틀린 길이 아닐까 하는 불안함 때문에

그 누구도 누리지 못할 당신만의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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