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생활 중간결산
오늘은 2025년 10월 6일 월요일, 빈 현지 시각으로 현재 오후 4시가 지나고 있다. 여기는 Cafe Jelinek. 아침부터 비바람이 꽤 몰아친 바람에 집에서 쉬는 것에 초점을 맞춘 하루였다. 오전에 아내가 아기 관련 물품들을 구하려고 DM(아기 관련 물품들이 잘 구비된 올리브영 같은 곳)으로 갔는데, 마침 집 근처 DM에서는 Baby water가 다 나간 바람에 좀 멀리 다녀오느라 오전에는 둥이랑 둘이서 이래저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아내가 들어와서 스파게티를 후딱 해 먹고 잠깐 짬이 나서 이곳 까페로 혼자 오게 되었다.
오늘은 브라우너를 한잔 마시는 중인데, 생각보다 사람이 정말 많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인데,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들 독일어로 이야기를 나누니 내겐 그냥 유튜브에서 틀어놓은 카페 ASMR과 같다.
벌써 이 나라, 이 도시에 온 지 20일이 되었다. 첫날은 짐 정리하느라 정신없었다.
둘째 날은 모짜르트, 베토벤, 마크 트웨인이 방문했던 그리첸바이즐에서 식사를 했고, 성 슈테판 대성당을 둘러보았다. 전망대는 아직 못 갔는데 떠나기 전에 다시 갈지는 모르겠다.
다음날은 쇤부른 궁전을 다녀왔다. 화려한 궁전 내부도 좋았지만 정원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날씨가 추워지고 있지만 달리기를 하러 다시 가보려고 한다. 그리고 인형극을 보았는데 나쁘진 않았지만 언어적 장벽을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Day 4에는 왕궁정원에서 '유럽의 여름, 그 잡채'를 느꼈고, 저녁에는 무지크페라인에서 뮌헨필의 공연을 관람했다. 그날 옆자리에 앉아있던 현지인이 이 공연들이 '빈에서 사는 즐거움 중 하나'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물론, 그날 '팔레스타인 시위'가 공연 중에 있었던 것 역시 잊을 수 없는 일이다.
Day 5는 둥이를 위한 유아 체험 공연을 다녀왔고, Day 6에는 무지크페라인에서의 두 번째 공연을 관람했다. 빈필과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마르타 아르헤리치 협주였는데, 그 백발노인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아주 많이 인상 깊었다.
Day 7에는 미술사박물관을 다녀왔다. 분데스뮤지엄카드 덕분에 이 날은 아내와 둥이와 함께 편안하게 산보하듯 눈에 담기만 하고 왔고, 다음날은 알베르티나 미술관에서 역시 쉬엄쉬엄 둥이 컨디션을 최우선으로 하며 구경하고 왔다. 이 날부터 날이 조금 추워졌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내가 감기에 걸리고 만다.
Day 9부터 며칠간은 내가 먼저 감기에 걸리고, 다음은 아내, 마지막으로 둥이까지 감기에 걸려 고생했다. 체력 약한 아비 때문에 고생한 아내와 둥이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흑. 그래도 Day 9에 한인마트에서 맛있는 담근 김치를 확보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
Day 10에는 골골대는 몸을 이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유모차 방풍커버 구매, 맘에 드는 카페 방문, 벨베데레 상궁에서 클림트의 'Kiss' 관람까지, 알찬 하루였다.
Day 11은 토요일이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벼룩시장을 오전에 둘러보고는 찻잔 세트를 구매할까 말까 고민한 하루였다. 결국 그다음 주에 방문했을 때도 고민만 하고 구매를 하진 않았다. 그리고 저녁에는 오페라 토스카를 혼자 관람했다. 다만 이날은 그것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 둥이의 침대 낙상 사고였다. 다행히 높지 않았고, 아주 '잘' 미끄러지듯 떨어져서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다시 한번 아기에게서는 눈을 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은 하루였다.
Day 12, 2025년 9월 29일. 카페 젤리넥을 처음 온 날이다. 카페는 참 좋았지만 결국 아내가 감기에 걸려 이날부터 며칠간을 고생했다.
Day 13. 결국 둥이가 감기에 걸린 것이 확정된 날이다. 자연사 박물관을 구경하고, 저녁에는 아내가 토스카 공연을 보러 갔다. 보러 가는 그 와중에 둥이 체온이 38도를 처음 넘겨서 밤새도록 간호를 하고 다음날에는 둥이를 데리고 현지 소아과 가서 진료를 받고는 약 처방을 받고 돌아왔다. 다행히 약효가 좋아서 열은 하루 만에 정상범위로 내려왔다.
Day 15. 아직 둥이 컨디션이 정상은 아니니 둥이는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번갈아 나갔다 온다. 나는 자연사박물관, 아내의 픽은 알베르티나였다. 아내의 알베르티나 야간 방문이 만족스러웠기에, 다음날도 둥이는 집에서 보고, 아내와 번갈아서 미술사박물관을 하루 종일 관람했다.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Day 17. 부부로서의 의미를 다시 깨달은 날. 저녁을 먹은 식당의 전망은 정말 좋았다.
Day 18. 알베르티나 2회 차(아내는 3회 차) 관람. 다음날은 시내 관람을 제대로 해보려고 했는데, 날씨가 또 추워진 관계로 왕궁정원의 모짜르트 동상을 보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미술사박물관을 잠깐 들른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그렇게 해서 오늘은 Day 20일째. 총 37일간의 일정이니, 절반을 넘기고 있다. 구글지도에는 백개가 훌쩍 넘는 장소들을 찍어놨지만, 이제 남은 기간 동안의 욕심은 크게 없다. 둥이와 아내의 안전과 건강이 최우선이니까. 다만 중앙묘지는 한번 들렀으면 좋겠고, 아내와 번갈아가며 프라터 혹은 쇤부른 궁전에서 조깅을 즐기고 싶다. 그리고 여유될 때마다 미술사박물관이나 알베르티나를 가서 그림들을 구경하고 싶다. 이제는 전체를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맘에 드는 그림 몇 가지만 여유롭게 보고 오면 될 듯하다. 아, 오스트리아의 옥토버페스트인 '빈 카이저 비즌'을 다녀와야 한다. 이 외에도 카페들을 좀 더 들러보고, 레오폴드 미술관도 한번 가고, 재즈바도 한번 가고, 적다 보니 계속할 일들이 생각나는 것 같다. 그래도 이 정도는 다 할 수 있으리라. 아직 남은 날이 많으니, 여유롭게 남은 시간들을 즐기자.
그래도 이렇게 장기간 체류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은 너무도 잘한 선택이다. 처음에 적응하느라 힘들 때, 그리고 감기 때문에 다들 고생했을 때는 여유보다 긴장이 더 컸고 제대로 즐기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래도 이곳이 익숙해진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장기간 해외 체류 경험은 쉽게 할 수 없을 테지만, 기회만 된다면 또 적극 추진해 봐야겠다.
Cafe Jelinek, 오늘도 편안했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