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미술관 뽀개기
오늘 오전은 나의 자유시간이었다. 그간 좀 아쉬웠던 그림들을 다시 보러 가는 시간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 생각은 적당히 맞고 적당히 틀리게 되었다.
우선 벨베데레가 9시부터 오픈이어서 벨베데레(상궁)를 최대한 일찍 갔다가, 하궁에도 한번 들러보고, 인접해 있는 알베르티나 모던과 알베르티나를 갔다 와야겠다고 계획을 했었다. 하루 종일 타국에서 아기를 혼자 보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기에, 복귀 시한은 오후 2~3시로 아내와 상호 합의를 하였다. 실행은 계획대로 되었으나, 만족도는 생각보다 좀 떨어지게 되었다.
한국에서 떠나온 지 3주나 되다 보니 한국에서의 연휴 일정에 많이 둔감했었다. 어제이던가 그제이던가 양가 부모님께 전화도 드려놓고는. 오늘이 추석 연휴 다음날이었고, 이번 주는 한글날과 대체공휴일도 있는 황금연휴란걸 몰랐던 것이다. 오늘이 화요일이었기에 아침 일찍 들른 벨베데레에 그렇게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많을 거란걸 알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게 나의 '조용하게 벨베데레를, 특히 클림트 작품들을 감상해 보겠다'는 계획은 방해를 받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방해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 정도 방해에 방해를 받을 만한 작품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
벨베데레는 우선 클림트, 에곤쉴레, 모네를 다시 본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몇 가지 꼽아보자면 우선 에곤쉴레의 '죽음과 소녀', '가족', '포옹', 발트뮐러의 '성체 축일 아침', '지친 하루(*임의로 의역한 제목이다. 원제는 독어로 Erschöpfte Kraft이고, 영어로는 Exhausted Strength이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재미가 없고, '지친 하루' 정도가 어떨까 한다.) 이 외에도 클림트의 작품들은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오스트리아 화가인 올가 비징거 클로리안의 '가을 낙엽'도 참 좋았다.
다음으로 벨베데레 하궁으로 갔다. 하궁에서는 '종교화', '모네, 르누아르 등 인상파 걸작들', '1900년대 초반 여상 예술가들의 작품들' 이렇게 3개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여성 예술가들 속에서는 또 케테 콜비츠의 작품들이 눈에 보였다. 알베르티나에서도 인상 깊었던 그녀의 작품들을 또 여기서 보게 되니까 느낌이 달랐다. 조금 피곤해지는 시간이었지만 알베르티나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길에, 알베르티나 모던을 먼저 들렀다. 그런데 지금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들만 있고 나머지 공간은 전시 준비 중이었다. 데미안 허스트는 영국 출신의 현대미술 작가로서 현재 전시 중인 것으로는 작은 상어와 양을 통째로 특수용액에 담아 전시해 놓은 것과 소를 해부해 놓은 것 등이 이었다. 현대미술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은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다시 알베르티나를 들렀다. 주 목적은 언급했듯이 케테 콜비츠의 작품을 다시 보는 것이었기에, 2층에 있는 Gothic Modern만 보고 왔다. 그런데 다시 보니까 케테 콜비츠의 작품이 주목했던 그 작품 말고도 몇 개 더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때는 인상 깊었던 저 작품(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 하나만 보였는데, 그 전에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작품들이 있었다. 벨베데레 하궁의 여성작가들의 전시에도 있었는데, 이 작가가 생각보다 더 유명하거나 중요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보고는 집으로 복귀를 했고, 아내와 둥이와 같이 이탈리아 식당을 가서 맛있는 피자와 아페롤 스프리츠를 맛나게 마시고 들어왔다. 들어오고 나서 아내가 나를 위해 맛있는 와인과 먹을거리들을 또 사러 다녀왔다. 나는 둥이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켰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하루를 보냈다. 이 하루하루가 모여서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 갈 것이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날도 2주 남짓 남았다. 아직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남았는데, 벌써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욕심일까? 인생이 그러한 것 아닐까? 충분히 즐길 시간이 남았는데도, 남은 그 시간을 부족하게 생각하고, 그 순간을 즐기는 것에 집중해도 모자랄 시간에,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아쉬워한다.
나는 지금 아내와 둥이가 잠든 시간에 빈의 숙소에서 글을 쓰고 있다. 오늘만 해도 미술관 네 군데를 다녀왔다. 누군가는 인생에 한번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할 그런 곳들을 다녀 왔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틈만 나면 또 가볼 것이다. 살면서 가장 오랜 시간 해외에 체류하는 경험을 하면서, 가장 많은 미술관/박물관을 다녀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아직은 후회를 할 시간이 아니다. 감상에 빠질 시간도 아니다. 이 곳에 머무르게 될 남은 시간 동안 더 충실히, 더 즐겁게 보낼 궁리를 하는 것이 한참 더 현명한 일일 것이다. 결국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 희노애락, 이 네 가지 감정의 리듬 속에 우리는 살아가는 것 아닐까. 내일은 변함없이, 진부하게, 또 내일의 해가 뜰 것이다. 그저 날씨가 조금 좋았으면 좋겠다. 프라터 공원에서 맥주 축제도 즐기고, 쇤부른 궁전 공원에서 달리기도 하고, 틈 날 때 미술관도 더 가야 하니 말이다.
이곳이든, 저곳이든, 빈이든 서울이든, 결국 오늘의 하루는 흘러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곁의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하며 하루를 흘려보내는 것이리라. 내가 그리 큰 사람은 아니라서 큰 의미를 담진 못한다. 그저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조금 더 힘이 닿는다면 내 주변의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조금 더 나은 하루를 살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 그 정도로도 차고 넘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행복한 하루를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