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뒤늦게 들기름 막국수에 꽂혔다.
5개월 간 한중일양식 메뉴를 최소 서른 종류 이상 배웠지만
K가 다시 할 수 있는 음식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조리과정 선생님들이 훌륭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요즘 K가 만드는 들기름 막국수는 ‘네’선생 레시피인데
그 맛이 참 편안하다.
이사를 한 지 거의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요즘
가끔 예전 살던 동네를 떠나서 아쉬운 것들이 하나씩 떠오르고는 한다.
그 중 하나가 시장에서 파는 순도 100%라는 메밀국수인데
작년에 이사를 한 후 한 박스로 사다 놓았던 것이
요즘 막국수를 만들어 먹느라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이 주변에 설마 국수 파는 집이 없을까 마는
꼭 그 집 국수를 사겠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한 박스를 사야할 테니 캐리어 까지 싣고서 였다.
거리로 50킬로미터 쯤 되지만
거기 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적게는 한 시간에서 많게는 거의 두 시간이 걸린 적도 있다.
장보러 가자고 선뜻 나설 거리는 아니기에
이것저것 겸사겸사 엮으려다 보니
덕분에 아버지 산소에도 갔고
신화당 사러 예전에 살던 아파트 근처 작은 수퍼마켓에도 들렀고
바삭한 바게트의 식감이 살아있는 베트남식당에서
반미(매운 맛 두 개, 한 개는 고수 많이 한 개는 고수 없이.)도 샀다.
이왕 근처에 간 김에 살던 아파트 단지 안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국수집은 오일장 다음날과 일요일에 쉰다고 했었다.
오늘은 장날 전날(?)이니 덜 붐빌 것이고
수요일이니 적어도 문을 닫은 날은 아니라는 것까지 확신에 차 있었다.
그 정도의 정보를 알게 될 때까지 헛걸음을 여러 번 경험해 본 터라
그래도 혹시...
“집안에 일이 있어 쉰다면 어쩌지? 메밀국수가 다 팔려 없다고 하면 어쩌지?”
라는 불길한 예감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었다.
지하차도를 지나 시장 근처에 다 와 가는데
점멸하는 신호등이 제일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엇! 뭐지?”
얕은 경사로 위로 올라서니 시장 주변으로 천막이 줄지어 쳐 진 것은 분명 장날 풍경이었다.
“이상하네, 장은 3일 8일 서는데? 오늘은 22일이고. 아! 아닌가? 23일이네?”
옆에서 운전대를 붙잡고 있던 K의 비웃음 섞인 표정이 안 봐도 보이는 것 같았다.
“어제 밤에 22일이라며 글도 써 놓고선?”
“그러네, 말 그대로 가는 날이 진짜 장날이네.”
그나저나 20만을 육박하는 오미크론 상황에도 장날에
시장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정부에서 뭐라고 하든 이제는 자발적으로 알아서들 살기로 한 모양이다.
빨리 국수만 사 가지고 가자며 서둘러 걸었다.
백 번 까지는 아니어도 그와 가깝게 갔던 곳인데도
미로같은 시장 안 길은 갈 때마다 헷갈렸다.
몇 개 골목을 헤매다 겨우 국수집 간판을 찾아 갔다.
그런데
국수가 한 개 밖에 없다.
멀리 이사 갔다가 찾아 왔어도 소용이 없다.
주변 공사 때문에 어제까지 휴업이었고 일주일만에 오늘 처음 문을 열었다고 했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걸까?
아무리 사장님 붙잡고 하소연 한들 없는 국수가 나올 리 없다.
와중에 젊은 여자 손님이 와서 만두를 찾는다.
사장님이 똑같은 상황설명을 하니 그 손님도 멀리서 일부러 찾아왔다고 했다.
국수 한 뭉치를 포장하러 안으로 들어가던 사장님이 멈칫하더니
구석에 있던 국수 한 뭉치를 찾아내서 들어보였다.
‘하필 이번 주에 공사를 할 게 뭐람.’
좀 전과는 다른 의미로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어제 왔으면 문도 안 열렸을 테니 그나마 오늘 온 게 다행이라 위로하며
순도 100% 메밀국수 두 뭉치에 쪽파 두 단 사 들고 집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