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오늘은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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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둘 째 주에 예약돼 있던 제주행 항공권과 숙소예약을 취소했다.

이 번이 세 번 째다.

‘상황 좀 지켜보고’

‘더위 좀 지나가면.’

‘추위 좀 풀리면’

‘비 좀 그치면’ 등등

K는 행동을 하는 데 앞서 일단 미루고 보자는 투의 말을 자주 한다.

이번 경우는 코로나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었고

작년 11월에 최저 요금으로 예약했던 항공권을

결국 위약금 물고 취소했다.

그동안의 상황은 좋아지기도 하다가

최근에 나빠지다가 비행기를 탈 무렵쯤이면 거의 정점에 닿을 거라는 보도를 보면서

뭐 굳이?

라는 마음에 취소를 결심한 터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이미 두 번 포기를 한 적이 있으니 이 번만큼은

단조로운 일상 탈출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얼마간 설렜었다.


‘다음에’

가자, 하자, 먹자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인적 드문 관악산 계곡에서 점심도 거르면서 맨 손으로 돌을 쌓아

아이들이 놀기 좋은 풀장(?)을 만들어 놓고는


“다음에는 삽을 가져와야겠어.”


라고 했던 시어머니의 ‘다음’은 오지 않았다.

가끔 그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풀장에서 누군가 잘 놀겠네. 라며 입맛을 쩝 다실뿐이다.

첫 유럽여행 중 피렌체에서

비가 오는 데다 아이의 다리에 무리가 와서

계획했던 여행지에 가지 못하게 됐을 때 아이가 나를 위로하듯 말했었다.


“다음에 다시 오면 되지.”


그 ‘다음’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걸 안다.

오래 전 7월 햇볕이 강렬하던 날

도시락을 싸가지고 멀리 아버지가 일하는 토목현장으로 가족소풍을 갔다.

아버지는 사무실 카메라를 가지고 와서 사진을 찍었다.

엄마에게 모자를 씌워주면서 이쁘다, 모자가 잘 어울린다 하면서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삼남매를 세워놓고도 찍고 하나씩 따로도 찍고

엄마에게 셔터를 누르라고 하고 아버지와 넷이 찍힌 사진도 있었다.

아버지가

다음에 집에 갈 때 사진을 인화해서 가져온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생일을 며칠 앞두고

현장보다 더 멀리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진은 회사 직원이 전해주었다.




안방 화장실 샤워기를 바꿔야겠다는 말은

당장이 아니고 언제 기회가 되면 하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K는 말 떨어지기 무섭게 샤워기 헤드를 확인하더니

그 날 해 떨어지기 전에 작고 깔끔한 헤드로 교체를 해 놓았다.

붓 놓은 지 오래지만 이제 붓글씨도 써 봐야지

수채화도 해봐야지

펜드로잉이 재미있던데 브런치 글에 그림을 넣어봐야지

소파 등받이 커버를 만들어 씌워야지.

하려고 생각하는 건 끝도 없이 나오는데

무슨 일인지 별 것 한 것도 없이 하루해가 가고 블라인드를 내리고 있다.

그 때마다

아, 이건 아닌데.

하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같은 자리에서 똑 같은 생각을 한다.

‘다음에’ 라는 말을 기대하며 설렜던 적이 있다.

그 말이 상황을 모면하려는 빈말이라는 것은 얼마 전에 알았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외계인을 색출하는 전사가 있었는데

지구인이라면 하지 않을 말이나 행동을 귀신같이 알아차려서 모두 잡았다.

그리고는 유유하게 지구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려는데

그 때 누군가 고맙다며 다음에 밥 한 번 먹자고 했다.

전사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며


"어, 그러니까 날짜를 정하죠 며칠 몇시에 만날까요?"


했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

즉, 지구인이라면 '다음에'라는 말이 빈말이라는 것을 모를리가 없다는 것.


K는 실천가이지만 나는 생각만 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여행에 있어서는 반대다.

나는 떠나자고 하고 K는 일단 좀 보자고 한다.

지금이 아니면 다음은 언제일지 모르는데.

생각만 하기에 세상은 빨리 변해가고

일단 두고 보기만 하기에는 설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은 일단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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