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산책을 하면서 보니 길이 가방을 멘 아이들로 화사하다.
그러고 보니 3월이다.
방학과 개학이 상관없어진 요즘
3월이 되니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친구가 생각났다.
작년 요맘때쯤 썼던 글을 꺼내 읽었다.
아마 내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해마다 봄이 되면 나는 다시 그 친구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다시 봄이 오고 있어.]
작년 이맘 때 쯤 이었다.
예약해 두었던 특가요금 제주항공권의 날짜가 가까워져
가야할지 취소해야할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 때 제주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는
(그리 친하지는 않은) 친구 D가 생각났다.
톡으로 그 곳 상황을 물었고
이왕 말난 김에 이 전에 친구가 추천하던 남원쪽 숙소에 대해서도 물었었다.
바로 답이 오지 않는 것은 업무 중이라서 일거라고 생각했고
답과 상관없이 그 무렵 상황이 매우 나빠져서 항공권을 취소하고는 잊고 있었다.
그리고 작년 가을 무렵
D와 같은 모임이었던 다른 친구에게서 그의 근황을 묻는 톡이 왔다.
그러고 보니 3월에 했던 질문에 결국 답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메신저를 열어보니 '1'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전화는 없는 번호라고 했고
메신저는 읽지 않은 나의 메시지만 늘어갔다.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눌렀다.
그러고 보니 사진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바다 한 가운데 서 있는 풍력발전기 사진과 함께
'봄이 오고 있어'
라고 한줄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
D와는 고등학교 때 독서 모임을 함께 했었고
졸업 후에는 아주 드물게 소식 정도 전해듣다가
삼십 년 만에 한 번 모임을 한 적이 있었다.
이후로 드문드문 한 번씩 생존을 확인하는 정도였다가
내가 이 곳으로 이사 올 무렵 같은 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었다.
반가움도 잠시 얼굴도 보기 전에 직장을 제주도로 옮겼다고 했다.
한 사람이 한 번 겪기도 버거웠을 폭우처럼 쏟아지는 가족사를 견뎌내고
비로소 가장 소박하고 편안한 일상을 찾아 떠났으려니 했다.
그 해에 제주도에 갔을 때 D를 만났다.
그 간에 건너건너 들었던 그의 스토리를 듣게 됐다.
소설을 쓰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남의 얘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흔히 하던 말처럼
소설로 쓰면 열권도 넘을 것 같은 D의 얘기를 글로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 다음해,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제주에 가면 D를 만났다.
자기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담담하게 털어놓는 그의 서사를 들으며
이제까지 듣고 느끼고 판단했던 친구는 D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러 부끄럽고 조금은 안쓰럽고 불쑥 미안했다.
그 것이 재작년 11월이었고
작년 3월부터 그가 사라진 것이다.
추측 가능한 얘기들을 될수록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언제든 다시 제주에 가면 D가 있을 테니까.
뜻밖의 소식을 지난 연말에 들었다.
예의 지난 번 D의 연락처를 물었던 친구에게서였다.
"D가... 지난 3월에..."
"......."
"네가 마지막으로 만난 셈이 됐어.“
자주 만나던 친구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시간이 갈수록 D에 대한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소식을 전했던 친구에게 그렇다는 말을 했다.
그 친구도 그렇단다.
친구 역시 그리 친하지도 않았는데 소식을 들은 후 꿈에도 보였단다.
다른 친구를 만났을 때 소식을 전했더니
충격이 큰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열일곱, 같은 시간대에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던 친구라서 였을까?
같은 나이를 살면서 너무 지난한 인생을 살았던 것이 마음 아파서였을까?
베란다 창가에 올 해도 목련이 꽃을 피울 채비를 하고 있었다.
주방 창가에는 작년에 딸이 심어준 넝쿨장미 가지에 잎이 올라오고 있다.
봄이 오고 있다.
주인을 잃어버린 D의 메신저 계정에는
가을에도 겨울에도 여전히 봄이 오고 있었다.
친구가 있는 그 곳은
언제나 봄이기를...
2021. 3. 9. 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