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릴 무엇이 있다는 것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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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였던 단지 옆 대형 건물에

입주가 시작 된지 한 달이 넘었다.

커다란 두 개의 건물이 가운데 광장을 중심으로 A동과 B동으로 이어진 형태다.

그 정도 규모라면 모르긴 몰라도 카페가 최소 두 개 이상은 들어올 것이며

생활형 숙소 형태의 분양 공고로 미루어 보건대

김밥집이나 햄버거 혹은 샌드위치 가게가 생길 수도 있다는 기대(?)를 했었다.

2월 중순 무렵부터 3월 초순까지는 입주를 환영한다는 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휑한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

언제쯤부터인가 간판이 붙은 곳도 있고 몇 곳은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움직임이 보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건물 규모가 크다고는 하지만 1층 상가의 무려 열다섯 곳이 부동산 사무실이라는 거다.

식당이든 학원이든 동일한 업종끼리는 모여 있어야 오히려 잘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그래도 덩치만 큰 휑한 건물에

이래도 괜찮을까 싶게 다닥다닥 붙은 부동산 사무실 간판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그 외 점포에는 여전히 임대 혹은 매매 전단이 붙어있는데

개 중 몇 곳, 눈길이 가는 곳은 있었다.

우리 집 방향인 건물의 오른 쪽 측면에 있는 한 점포는

사실상 가장 먼저 공사를 시작했는데

며칠 전에는 작고 세련된 상호와 커피 엔 디저트 간판이 붙었고

그 다음에는 디저트 진열장과 커피 스테이션이

그 다음 날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그리고 급기야 오늘은 4월 1일 오픈한다는 패브릭 포스터가 붙었다.

참으로 가장 바람직한(행인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준) 오픈 과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가 하면 건물의 정면 방향의 나란히 있는 두 점포가 눈에 띈다.

왼쪽은 확실한 카페이름을 여기저기 붙여 놓아

‘여긴 카페 자리’ 임을 공식화 해 놓은 반면

오른쪽에는 뭐가 될지 알 수 있는 정보는 어디에도 없는데

벌써부터 한 눈에도 독특해 보이는 출입문과 창문이 있는 파스텔 톤의 나무 벽이 세워졌다.

어느 날엔가는 양쪽 여닫이문에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졌고

다음 날에는 자바라 윈도를 단 양쪽 창문 중 오른 쪽에는 외부로 바 테이블이 생겼다.

그 다음 날에는 내부에 주방 바로 보이는 아일랜드가 생겼고

그 다음 날에는 깔끔한 조명이 달렸다.

이쯤 되고 보니 내가 마치 그 건물 관계자이거나

혹은 지분이 있거나 하다못해 아는 사람이라도 있는 것 같은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그냥 동네에 새로 생긴 엄청 큰 건물일 뿐이다.

내가 언제 동네에 새로 생긴 건물에 이렇게 까지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나.

집 앞에 예쁜 디저트 카페가 생긴들

내가 과연 그 곳에 가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을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생각해보면 좀 엉뚱하기는 하지만

산책을 할 때면 으레 그 건물을 한 바퀴 돌면서

그날그날 달라지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한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의 사라져가는 모습들을 사진에 담는다는 외국인이 TV에 나왔다.

오래된 철길, 방앗간, 이발소 등

어쩌면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풍경들과 사람을 담는다고 했다.

사진여행을 다닐 무렵

왜 인지도 모르면서 나도 그런 풍경들에 이끌렸었다.

때로는 마음이 저릿하기도 했고

가끔은 집에 돌아온 것처럼 기분이 나긋해질 때도 있었다.

나이가 더 들더라도

꿋꿋하게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K와 달리

나는 작더라도 마당이 있는 집에 한 번 살아보는 게 소원이었다.

다시 돌아가서 살아보고 싶은 시간은 없지만

그 시간에 살았던 공간은 가끔씩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었다.

아마도 그리운 것을 그리운 대로 두기가 마음아파서 였던 것 같다.

이제는 지난 시간들에 매었던 끈을 풀어 놓아주고

이제 올 시간들에 마음을 맡겨야할 때가 온 것 같다.




무슨 공사를 하는지 궁금하면 공사하는 분들에게 물어보면 알 일이다.

질문하기 싫어하는 a형이라서 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그냥 지금 이 순간의 설렘을 느끼는 게 좋다.

끝내주는 브리또를 파는 멕시칸 식당이면 좋겠지만

순댓국집이면 어떻고 중국집이면 또 어떤가.

아니, 인테리어 독특하게 한 또 하나의 부동산 사무실이면 누가 뭐라겠나.

기다릴 무엇이 있다는 것

그거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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