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팔아서 쌀 샀다.

오늘은

by 이연숙
20220321책 팔아서 쌀 샀다1-tile.jpg



책 욕심이 많아서 TV를 없앤 건지

TV를 없앴기 때문에 책을 사 들이기 시작한 건지는 정확하지 않다.

아이들이 중학생일 때 거실에서 TV를 치웠고

각자 방에 흩어져 있던 책들을 거실에 모아 꽂았다.

그 무렵 한 여성지의 ‘거실을 서재로’ 이벤트에 참여했고

거실 양쪽 벽이 책으로 그득한 모습을 보며 뿌듯했다.

그 때만해도 책이 짐으로 여겨질 만큼은 아니었다.

이전 집으로 이사할 때 두 배로 넓어진 거실 양쪽 벽면을 선반형 책장으로 만들었고

다시 이사를 준비할 때에는

4년 사이 성글었던 벽면이 빈틈없이 차 있다는 것을 알았다.

책의 종류는 단연 소설이 70%로 대부분이었고

20%정도가 에세이 그리고 나머지는 인문 자기계발 취미 이론서 등이었다.

집의 크기가 삼분의 일 정도로 줄 예정이라

책도 삼분의 일 쯤 처분했었다.


봄바람이 올해는 청소와 정리 쪽으로 났다.

지난 주

화요일에는 냉장고 두 개를

수요일에는 책장을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겨우내 결로가 심각한 앞 뒤 베란다 선반을 대대적으로 뒤집었다.

한바탕 정리를 끝냈는데도 책장에서 뽑아낸 책이 또 쌓였다.

알라딘에 팔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해서

책을 들고 나갔다.

매입 가능하다는 책만 가지고 갔어도

책의 상태에 따라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 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예전에 이유 설명 없이 안 된다고 다시 올려놓던 것에 비해

이 번 직원은 일일이 설명을 해준다.


“책은 깨끗한데요, 곰팡이가 있어요.

곰팡이가 있으면 다른 책에도 옮겨가기 때문에 매입이 어려워요.“


어쩌겠나. 주섬주섬 거절당한 책을 주워 담았다.

샀던 책값의 십분의 일도 안 되는 금액을 현금으로 받으며

공연히 K의 눈치가 보였다.

나선 김에 쌀 사러 마트에 들렀다.

현미와, 귀리도 보이길래 카트에 담았다.

정말로 쌀만 사려고 했는데

바로 앞에 맥주가 세일을 하네?

딱 칭따오 한 팩만 넣으려고 했는데

K가 구이네스(?)를 넣으면서


“지난번에 애들이 이거 요즘 안 나온다고 그랬잖아?”


라며 굳이 변명을 한다.

책 팔아서 술 샀다고 하면 좀 거시기 하니까

그냥 쌀 산 걸로 해두기로 했다.


베란다 선반 정리를 하다가

고이 모셔둔 술 상자를 발견했다.

그 간에도 지인에게 선물로 주고, 마시고 아이한테 주고

박스에는 여행지에서 샀거나 미국에 살 때 사서 아끼던 것들만 남아있었다.


“이건 어쩔까? 먹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계속 모셔두기도 그렇고.”

“술이란 건 말이야,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는 거야. 그래야 애들이 왔을 때

우리 오늘 데킬라 마실까? 오늘은 보드카가 땡기네? 하면서 마시는 거지.“


듣고 보니 그럴 듯한 것 같기는 했지만

책으로 꽉 찬 거실 어디에도 술병을 둘 자리는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스멀스멀 또 책을 뽑기 시작했다.

다른 카테고리를 합치고 전 날 후보에서 빠졌던 것을 다시 빼고

얻은 책과 새 책, 헌책방에서 구입해서 세트를 채워놓았던 만화를 빼서 공간을 만들었다.

그 곳에 박스에서 잠자던 술병들을 꺼내 올려놓았는데

위아래 칸과의 조화가 어째 거시기하다.


어제는 당근에서 예약했던 라벤더 화분을 가지러 갔다.

가는 길이 중고서점 가까운 곳이라 빼 놓았던 책도 가지고 였다.

화분 값을 책판 돈으로 치렀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K가 말했다.


“책 판 돈으로 화분 산거네.”


책 팔아서 쌀이나 맥주 샀다는 말보다

어쩐지 향기로운 느낌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갔다 올게.” 라고 말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