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책 욕심이 많아서 TV를 없앤 건지
TV를 없앴기 때문에 책을 사 들이기 시작한 건지는 정확하지 않다.
아이들이 중학생일 때 거실에서 TV를 치웠고
각자 방에 흩어져 있던 책들을 거실에 모아 꽂았다.
그 무렵 한 여성지의 ‘거실을 서재로’ 이벤트에 참여했고
거실 양쪽 벽이 책으로 그득한 모습을 보며 뿌듯했다.
그 때만해도 책이 짐으로 여겨질 만큼은 아니었다.
이전 집으로 이사할 때 두 배로 넓어진 거실 양쪽 벽면을 선반형 책장으로 만들었고
다시 이사를 준비할 때에는
4년 사이 성글었던 벽면이 빈틈없이 차 있다는 것을 알았다.
책의 종류는 단연 소설이 70%로 대부분이었고
20%정도가 에세이 그리고 나머지는 인문 자기계발 취미 이론서 등이었다.
집의 크기가 삼분의 일 정도로 줄 예정이라
책도 삼분의 일 쯤 처분했었다.
봄바람이 올해는 청소와 정리 쪽으로 났다.
지난 주
화요일에는 냉장고 두 개를
수요일에는 책장을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겨우내 결로가 심각한 앞 뒤 베란다 선반을 대대적으로 뒤집었다.
한바탕 정리를 끝냈는데도 책장에서 뽑아낸 책이 또 쌓였다.
알라딘에 팔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해서
책을 들고 나갔다.
매입 가능하다는 책만 가지고 갔어도
책의 상태에 따라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 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예전에 이유 설명 없이 안 된다고 다시 올려놓던 것에 비해
이 번 직원은 일일이 설명을 해준다.
“책은 깨끗한데요, 곰팡이가 있어요.
곰팡이가 있으면 다른 책에도 옮겨가기 때문에 매입이 어려워요.“
어쩌겠나. 주섬주섬 거절당한 책을 주워 담았다.
샀던 책값의 십분의 일도 안 되는 금액을 현금으로 받으며
공연히 K의 눈치가 보였다.
나선 김에 쌀 사러 마트에 들렀다.
현미와, 귀리도 보이길래 카트에 담았다.
정말로 쌀만 사려고 했는데
바로 앞에 맥주가 세일을 하네?
딱 칭따오 한 팩만 넣으려고 했는데
K가 구이네스(?)를 넣으면서
“지난번에 애들이 이거 요즘 안 나온다고 그랬잖아?”
라며 굳이 변명을 한다.
책 팔아서 술 샀다고 하면 좀 거시기 하니까
그냥 쌀 산 걸로 해두기로 했다.
베란다 선반 정리를 하다가
고이 모셔둔 술 상자를 발견했다.
그 간에도 지인에게 선물로 주고, 마시고 아이한테 주고
박스에는 여행지에서 샀거나 미국에 살 때 사서 아끼던 것들만 남아있었다.
“이건 어쩔까? 먹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계속 모셔두기도 그렇고.”
“술이란 건 말이야,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는 거야. 그래야 애들이 왔을 때
우리 오늘 데킬라 마실까? 오늘은 보드카가 땡기네? 하면서 마시는 거지.“
듣고 보니 그럴 듯한 것 같기는 했지만
책으로 꽉 찬 거실 어디에도 술병을 둘 자리는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스멀스멀 또 책을 뽑기 시작했다.
다른 카테고리를 합치고 전 날 후보에서 빠졌던 것을 다시 빼고
얻은 책과 새 책, 헌책방에서 구입해서 세트를 채워놓았던 만화를 빼서 공간을 만들었다.
그 곳에 박스에서 잠자던 술병들을 꺼내 올려놓았는데
위아래 칸과의 조화가 어째 거시기하다.
어제는 당근에서 예약했던 라벤더 화분을 가지러 갔다.
가는 길이 중고서점 가까운 곳이라 빼 놓았던 책도 가지고 였다.
화분 값을 책판 돈으로 치렀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K가 말했다.
“책 판 돈으로 화분 산거네.”
책 팔아서 쌀이나 맥주 샀다는 말보다
어쩐지 향기로운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