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갔다 올게.” 라고 말할 때

오늘은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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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아나토미⌟에서 데릭이

자신의 성공적인 일보다 가족과 함께 살기를 결정하고

마지막 정리를 위해 집을 나서며


“갔다 올게, 눈 깜짝 할 사이에 돌아올 거야.”


라며 메러디스에게 키스를 했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인지

그냥 갔다 온다는 것도 아니고 눈 깜짝 할 사이에 돌아온다고 말 한 것은

어쩌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막히는 길을 피해 지름길로 돌아가던 중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도와주다

자신이 더 큰 사고를 피하지 못했다.


일상이 드라마와 같다면

“갔다 올게.” 라고 말하고

저녁에 별 일 없이

“갔다 왔어.” 라며 돌아올지

아니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지 미리 알아차려서

오늘은 가지 말고 나랑 놀자며 붙잡을 수 있을 텐데.




긴 겨울 휴가를 끝내고 K가 새로운 일상을 시작했다.

지난 화요일 첫 출석을 앞두고

K는 입학을 앞 둔 초등학생처럼 한 편 설레고 한 편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간편하게 간다고 했다가

제일 작은 가방을 가지고 간다고 꺼냈다가

개인 컵도 넣고 더우면 옷도 벗어 넣어야 하니

조금 큰 게 좋지 않겠냐는 내 말에 가방을 바꿨다.

날씨가 애매해서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빈곤한 옷장을 몇 번이나 뒤적거렸다.

첫날은 오리엔테이션이라 원래 시작시간보다 30분 늦게 나가도 된다면서도

여유는 느껴지지 않고 여전히 긴장과 설렘의 중간쯤을 오락가락 하고 있었다.

드디어 집을 나설 시간

중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다듬고 마스크를 쓰고

신발을 고르고 구두주걱으로 신발을 신고는


“휴대폰!, 지갑! 됐지?”


혼잣말을 하더니 문을 열고나서며


“갔다 올게.”


라며 한 쪽 손을 들어 인사를 한다.

그 소리가 왠지 처음 듣는 것처럼 생경함과 동시에 잠깐 설렜다.

30 여 년 동안 매일 아침마다 듣던 소리였음에도 그랬다.

K는 집을 나서기 전 워밍업이 몹시 길다.

인사를 하려고 출입문 앞에 서 있다가 화장실이 급해서


“그럼 잘 댕겨와유.”


라며 민망하게 자리를 떠난 적도 있고

나도 약속이 있어 빨리 씻어야 된다며 쫓아 보낸 적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긴 준비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출입문이 닫혔는데

돌아서기 무섭게 키패드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휴대폰!

이어폰!

지갑!

을 외치는 것이 그리 별난 일도 아니었다.

그 때는 그런 날이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지루한 것을 못 견디는 K가 퇴직 후에 집에만 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돈을 벌어오라고 바가지를 긁은 적도 없고

삼식이 밥해주기 귀찮다고 구박을 한 적도 없는데

그는 줄곧 집에서 탈출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갔다 올게.”


라고 말할 때 K의 표정을 얼핏 보았다.

그 것은 갈 곳이 있어 집을 나서는 사람의 당당함이었다.

그 날 저녁, 출입문 열리는 소리에 버선발로 뛰쳐나가

온 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하는 단추를 안고 들어오는 K가


“다녀왔습니다.”


라고 인사를 했다.

참 오랜 만이다.

그런 표정 오래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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