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웃을 일도 별로 없고 게다가 소리 내서 웃어 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얼마 전 TV를 보다가 꺼이꺼이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다.
옆에서 보던 K,
그게 그렇게까지 웃긴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TV보다 TV를 보는 나를 보는 게 더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유명 연예인들이 소도시에서 열흘간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프로그램인데
슈퍼 안에 있는 간이식당에 두 부부가 왔다.
서로 처음 만나게 된 사연을 얘기하고 있었다.
남편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혼을 했다는 부부는
열세 살 차이가 난다고 했다.
앳된 아내는 남편의 넉넉한 마음과 유머가 좋았다고 했다.
다른 부부가 나무를 처분하고 있다는 말에
어린 아내가 그거 나도 달라고 했다.
옆에 앉아 있던 맘 좋게 생긴 남편이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띈 얼굴로 나지막이
“지비가 삽질할랑가?”
한다.
자막을 보고도 그게 무슨 말인가 해서 한참 생각했다.
화면 속 상황은 이미 바뀌었는데
뒤늦게 웃음이 터져 멈추지를 않았다.
서울말로 하면
“당신이 심을 거야?”
(즉, 어차피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 쉽게도 말한다는.)
일 테고
경상도 남편이었다면
“니~가 삽질할거가?”
쯤 아닐까 싶다.
(참고로 부모님은 경기도 고양군 출신이고
나는 서울 출생임. 사투리에 무지하다는)
세상 다정한 말투로 들렸던 그 말이 결국
네가 할 것도 아니면서 그걸 왜 달라고 하냐는 뜻이었던 거다.
그러면서도 아내를 지그시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꿀이 떨어진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아내를 위해서라면 나무 백 그루라도 심어줄 것 같았다.
순수한 아내 표정, 능청스러운 남편의 말투가 재미있어 웃다가 눈물이 났다.
사투리를 좋아하는데 그 중 남도 사투리는 뭔가 쫀득한 맛이 있어 더 좋다.
유머는 없지만 우리 집 K도 사람은 좋다.
어쩌면 그도 나름대로 수준 높은 유머센스를 가지고 있는데
내가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에는 주문했던 다시멸치가 배송됐다.
먹던 게 남아있으니 급할 것도 없다 싶어 주방 한 편에 두었는데
그걸 본 K의 한 마디.
“아, 멸치는 왜 또 주문했어!”
라더니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슬그머니 방으로 가지고 들어간다.
“그건 왜?”
“당신이 딸 거야? 어차피 내가 딸 거잖아.”
멸치똥 따는 걸 말하는 거였다.
내가 할 때는 주방으로 세탁실로 왔다 갔다 하느라 하루 종일도 걸렸는데
어느 날엔가 K가 도와주니 수월하게 끝났었다.
이 후로 멸치가 배송되면 으레 자기 일인 양 하게 된 것 같다.
이 말을 사투리로 하면 어떻게 될까?
“지비가 똥따불랑가?”
삽질을 하든 똥을 따든 이왕이면 그냥 좀 하면 안 되나?
어차피 할 거면서 괜히 미안하게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