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야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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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하루는 남동생이 집에 와서 하루 자고

큰아이 학교 가는 길에 같이 나갔다.

지하철 역은 학교와 반대 방향인데

어쩐지 장꾸 조카가 궁금해 뒤를 따라가 보았더란다.

1층 입구를 나와 동을 끼고 돌면 놀이터가 있는데

장꾸가 가방을 멘 채 미끄럼틀을 시원하게 한 번 타고 내려오더란다.

뺑뺑이도 한 번 돌려보고 그네도 흔들어보더니

몇 걸음 가다가 바닥에서 뭔가 줍길레 보니 나뭇가지였단다.

나뭇가지로 가로수를 툭툭 치면서 가다가

어느 동 앞에서는 아예 주저 앉더란다.

도대체 뭔데 그러나 싶어 발소리를 죽이며 가보았더니

그 곳은 재활용 쓰레기통 앞이었고

장꾸는 어느 집에서 내어놓은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있더란다.

웃기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얼른 학교 가라고 잔소리를 해줄까 어쩔까 망설이는 동안에도

하는짓이 엉뚱해서 그냥 보게 되더라고 했다.

아이는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더란다.

다행히 지나가던 경비 아저씨가 학교 가라고 재촉을 대신 해주는 바람에

장꾸는 그제서야 학교로 걸어갔다고 한다.

가는 동안에도 녀석은 온갖것이 궁금한듯 두리번 거리느라

걸음은 느렸고 세상 걱정없는 아이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 내일 부터는 한 시간 쯤 일찍 보내야 할 것 같아.


참고로 아이의 학교는 우리가 살던 아파트 단지 후문에 붙어 있어서

양념 조금 쳐서, 엎어지면 배꼽 닿을 거리에 있었다.





아침 산책을 하는 시간이

동네 초딩이들 등교시간과 맞물린다.

초등학교 뿐 아니라

노란색 유치원 차량들도 많이 눈에 띄고

젊은 엄마들은 어깨에 가방을 메고 아이 손을 잡고 바쁘게 걸어간다.

유치원마다의 스팟이 다른건지

한 유치원의 차가 여러곳에 정차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한 블럭이 끝날 때마다 아이와 엄마 들이 모여 서 있다.

버스는 이미 정차했는데

저 쪽에서 양 어깨에 가방을 메고 한 아이는 걸리고 한 아이는 안고 뛰는 직장 맘이 보인다.

힘에 부친듯 안긴 아이가 스르르 흘러내렸다.

다행히 버스가 기다려줘서 아이들은 차에 탈 수 있었다.

애초에 메이컵을 안한건지 했는데 지워진건지

땀으로 흥건한 아이들 엄마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그러다 새삼스럽게

차에 탄 아이들, 엄마들, 심지어 유모차에 탄 아기 까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게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걸까?


단지내 중앙로를 벗어나 우리 집이 있는 사잇길로 들어왔다.

여기저기에서 가방을 멘 초등학생들이 학교 방향으로 걸어간다.

놀이터 앞을 지나는데 어쩐지 익숙한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학교에 가다말고 가방을 벗어 던져놓고 미끄럼틀을 타느라

아침부터 땀이 흥건한 사내 아이들이었다.

놀기에 열심인 아이들의 표정에서 문득 우리 장꾸가 떠올랐다.

해맑은 그 모습이 그리워서

경비아저씨가 학교에 가라고 재촉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떴다.

시간이 많이 지나갔지만

바뀔 것은 바뀌었고 변하지 않은 것은 아직 그대로였다.


- 요즘 아이들은 전화 아이콘이 왜 저렇게 생긴건지 모른다며?

- 그렇대, 우리 때는 전화받는 모습을 엄지와 새끼 손가락으로 표현했는데 지금은 손가락을 모아 스마트폰을 쥔 자세를 한다며?

- 저장장치 표시에 디스크 그림을 보면 이게 뭐냐고 그런대.

- 아 맞네 씨디도 뭔지 모르겠다 그럼.

- 그치,

- 나중에는, 어머나~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고? 아니 왜애? 할 지도 모르겠네.

- 아니지, 세상에...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던 때도 있었어? 할 수도 있지.

- ......................!!


아이의 말에 나는 순간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영상에선가 버스에서 모든 사람들이 방독 마스크를 쓰고 있던 장면이 떠올라서였다.

이번 만큼은 아이 말이 틀리면 좋겠다.

그냥

라떼는 말야,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어.

그것도 반드시 K94인증을 받은 거라야 했다니깐?

라고 케케묵은 얘기로 허세를 부리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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