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일기 (1)
K가 확진이 됐다.
어제 아침
“목이 칼칼하고 기침도 나네? 검사해봐야 하나?”
“그래? 나도 그런데.”
그래서 식탁에 마주 앉아
사 두고 꺼내보지도 않았던 자가 검진 키트의 포장을 뜯었다.
각자 면봉을 들고 자기 콧구멍에 넣고 빙빙 돌렸다.
“이걸 어디다 떨어뜨리는 거지?”
“글쎄.”
“임신테스트기 안 써봤어?”
“뭐래..?”
그 시절에 그런 걸 해봤을 리 없지 않은가.
둘 다 약간 정신이 혼미해 아무 말이나 하는 중이었던 것 같다.
10분이 지나고
내 것은 한 줄이 점점 선명해지는 가운데
K의 것은 선명한 한 줄 옆에 긴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눈 부릅뜨고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희미한 줄이 하나 더 있었다.
K는 지하철 역 근처에 있는 선별진료소에 간다고 나갔다.
그리고 오늘 아침
양성이라는 내용과 함께 동거인 3일 이내 검사하라는 문자가 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며칠 전 내가 밤새 앓았던 증상이 코로나 였나 싶었는지
K는 와중에 역학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거야 모르지만 지난 금요일에 학교에 확진자가 나왔다며.”
기껏해야 2~3일에 한 번 새 건물 주변이나 어슬렁거리고
일주일에 한 번 세 명 혹은 네 명이 칸막이 친 책상에서 달랑 50분 하는 영어수업이
집 밖에 나가는 전부인 내가 먼저 감염이 될 가능성은 희박해보였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확진은 K가 됐는데 몸살에 감기 증상은 내게서 보이고 있었다.
말이 씨 된다고 하던가?
아무래도 말이 너무 빨랐던 것 같다.
요즘 들어 남편하고 삐걱거리던 친구 J
안 그래도 미워 죽겠는데 남편이 코로나 까지 옮겨주었다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래도 뭐, 나라에서 돈도 주고 격리 키트라며 이것저것 주데요.”
“그래요? 그럼 어차피 걸릴 거면 미리 걸리는 게 낫겠네, 이제 그런 거 다 없앤다던데.”
“그렇다면서요? 난 또 살면서 그런 걸 다 받아봤네요.”
예전 직장 후배도 확진이었다가 다시 출근했다고 했다.
“많이 아팠어?”
“아프긴 했는데 차라리 앓고 나니까 마음은 편해.”
“그렇겠다. 오미크론은 자연면역인 사람에게는 잘 감염되지 않는다더라.”
“맞아! 언니도 그냥 걸려버려! ㅋㅋ.”
같이 웃고 말았지만 정말 그런 생각을 잠깐 했던 것도 같다.
무려 3년을 전전긍긍하며 조심조심 지냈는데
이제 와서 감염이 된다는 것이 억울할 것 같기도 하지만
올 것은 오고, 치를 것은 치르는 게 마음 편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 명 중 한 명이 걸린다는데
내가 과연 그렇게 운이 좋은 다섯 명에 해당할지 확신이 서지도 않았다.
그런 마음을 누가 읽기라도 한 것처럼
결국 우리 집에도 올 것이 오고야 만 셈이다.
지병이 있어 우려가 됐던 K는 다행히 별다른 증상을 호소하지 않는다.
만 60세가 되지도, 지병이 있지도 않은 데다
아직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나는 몸살 증상 때문에 자꾸 누울 자리만 보게 된다.
검사 받고 오는 길에 간식 좀 많이 사다 달라 하길 레
편의점에 들러 2+1 과자 한 보따리, 그리고 아이스크림까지 갖다 주었다.
방에 들어 앉아 밀린 드라마 보며 빈둥거리는 K의 모습이 세상 편해 보인다.
어떤 상황에든 적응 하나는 빠른 그가 늘 부러웠지만 이 번 경우는 특별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만약에 나도 확진이면 분리수거는 어떻게 하지?
음식물 쓰레기는 어떻고 단추 산책은 또 어떻게 하나?
만약에
나는 음성으로 나오면 콧구멍만한 집 안에서 계속 마스크를 써야 하나?
서로 마주치지 말아야 하고
음식은 사식 넣어주듯 내가 넣어줘야겠지?
그래도 마음 한 편에서는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든다.
지원금을 못 받든, 키트 지원이 끊겼든
우리가 막차를 탄 거면 좋겠다.
이렇게 코로나와 이별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