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나갈 때와 못 나갈 때

은둔 일기 (2)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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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은 없었다.

아마도 자가검진키트의 사용 요령을 몰라

콧구멍의 엉뚱한 곳을 휘저었나 보다.

어제 K에게 왔던 통보보다 이른, 아침 일곱 시쯤 양성이라는 문자가 왔다.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집에서 확진자와 확진자 아닌 사람이 생활을 하는 게

이만저만 혼란스러운 게 아니라는 것을 어제 하루 체험으로 충분히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마스크 안 해도 되겠네.”



“같이 앉아 밥 먹어도 되겠네.”


가 K에게는 가장 반가운 부분이었던 모양으로

쿨하게 마스크부터 벗어던졌다.

그러고는 바로 보호자 모드가 작동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집중 관리 대상인 60세가 넘은 으르신이

60세가 안 돼서 관리에서 제외된 일반인(?)을 보호하는 모양새다.

아침에 걸려온 보건소 관찰 전화에 대고

정작 본인 증상은 어제와 비슷하다고 말하고는

같이 사는 사람의 증상에 대해 길게 설명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어제보다 조금 나아졌다는 K와 달리

나는 온갖 증상의 종합세트처럼

인후통 콧물 근육통 오한 그리고 기침을 할 때마다 목이 찢어지는 듯 아픈 것까지

말 그대로 발열만 빼고는 증상 지대로다.

여하튼 그런 으르신의 적극적인 활약에 힘입어

점심 무렵에는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과정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어제 처방을 받은 K의 약은 오늘 직원이 직접 집으로 배송을 해 준다고 했었다.

그런데 오늘 처방을 받은 내 약은 관리대상이 아니다보니 누군가 가지러 와야 한다고 했다.

2인 세대이고 둘 다 감염이 된 상황인데 어쩌라는 말인지.

두 시간 이내에 수령하라는데

주변에 약 심부름을 부탁할 만큼 가까운 지인이 있을 리 없고

아이들은 멀리 있었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있었다.

약값보다 비싼?(비쌀지도 모를) 퀵 비용을 들이고 나니 단박에 해결이 됐다.




점심을 주문하려고 배달어플을 보다가

K가 놀란다.


“배달비가 오천 원이나 한다고?”


사람마다 어차피 쓰는 돈 중에도 가장 아까운 부분이 있게 마련인가보다.

오래전에 알던 친구는 자기는 이상하게 주차비가 세상에서 제일 아깝다고 했다.

참고로 그 친구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을

차를 타고 돌아서 10분 걸려서 간다.

K의 경우는 배달비다.

하여 K는 배달 어플을 포장주문 용도로만 사용했었다.

주문을 해 놓고 자전거를 타고 가서 직접 픽업해오는 편이 마음 편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고 보니

어쩔 수 없이 배달 주문을 하려다 요금을 확인 한 모양이었다.

몸이 아프지만 않으면 온종일 집에서 빈둥거리며 지내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은 나에 비해

K는 애써 괜찮은 척 해보지만 벌써부터 좀이 쑤시는 기색이 역력하다.

집에 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매일 일정이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느라

출입문에 붙여 놓은 풍경소리가 조용할 날이 없다.




4월이 시작되는 날에 할 일을 메모해 놓았었다.

중앙시장에 있는 방앗간에 가서 들기름을 한 말 짜고

화훼단지에 가서 커다란 로즈마리 화분을 사려고 했다.

그러고 나서는 장을 봐다가

사위 생일 음식을 만들어서 대전에 가려고 했다. 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점심에 막국수 해먹을까 하다 무심히, 들기름을 한 병이라도 사올까?

말하고 보니 집 밖에 나갈 수 없는 처지라는 게 비로소 실감이 됐다.

4월 1일에 오픈한다던 집 앞 디저트카페에도 가보고 싶었는데

2일이면 끝난다는 커피엑스포 초청장도 받았는데...

안 나간다고 뭐라는 사람 없었고

자꾸 나간다고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안 나갈 때와 나갈 수 없어서 못 나갈 때의 기분은 매우 다르다.

갑자기 가고 싶은 곳이 많아진다.

그래봐야 일주일 후에 그 곳 다 돌아다닐 것도 아닐 게 뻔한데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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