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지금

은둔 일기 (7)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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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하는 날도 아닌데

K가 열두 시를 기다렸다.

신데렐라에게는 집에 돌아가야 하는 이유였다면

K에게는 집에서 나갈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수요일은 재활용 쓰레기 분리 배출하는 날이다.

격리 기간 동안 쌓아 놓았던

종이와 비닐 쓰레기를 입구 한 쪽에 차곡차곡 쌓아 놓고

K는 열두 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약기운 때문인지 요즘 밥만 먹고 나면 졸린 나는

일찌감치 잠자러 들어갔다.

아침에 일어나니

다용도실이 말끔해져있었고

저녁에 건조기에 넣었던 빨래가

곱게 접혀 소파위에 놓여있었다.

우렁각시라도 다녀간 모양새다.

샤워를 하고 면도까지 하고 나온 K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가족 톡에 격리 해제의 기쁨을 널리 알리는 문자와 사진을 올리자

큰아이는, 변화가 극단적이라고 했고

작은아이는, 격리랑 면도는 대체 무슨 관계냐고 물었다.

K의 대답

격리=면도 안하기.

턱에 수염 나 본적 없는 나로서는 그게 무슨 공식인지 이해할 길 없으나

K가 그렇다니 그런가보다 했다.


수업의 한 부분으로

K는 오늘 텃밭 가꾸기 체험을 하러 간다고 했다.

열 시 반까지 가야 하는 곳에 가기 위해

여덟시 반에 집에서 나섰다.

씨감자와 쌈채소 몇 가지 종류를 심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K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에 차 보였다.

역시나 K는 사람과 어울려 있을 때 에너지가 채워지는 부류인 것 같다.


아침에 흐린 것 같던 날씨가

오후로 갈수록 봄날의 전형처럼 화사하다.

어느 사이 아파트 담벼락에 있는 목련이 활짝 피었다.

테라스 창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이 눈이 부시다.

단추는 해를 따라가며 자리를 새로 펴고 누워 잔다.

주방 창 아래 나무에 벚꽃이 띄엄띄엄 잎을 벌리고 있다.

바깥은 지금

봄 물결이 치고 있다.

일주일 사이에 봄이 깊숙이 들어앉았다.

그다지 우호적이었던 적 없는 봄 타령을 하는 이유는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저절로 채워지는 것이 고마운 줄 몰랐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

바람, 햇빛, 계절 모두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시리다.

격리라는 대가를 치르면서

안 그래도 많은 생각에 생각 하나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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