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낸다는 말이지?

오늘은

by 이연숙


계획을 세우고 하루를 보낸 적이 있었나 싶다.

전날 잠자기 전에 아이폰 메모장에 다음 날 할 일 체크리스트를 쓴 적도 있기는 하지만

까마득한 옛날이야기 같다.

오늘 역시 계획은 없었는데

아침부터 의식의 흐름대로 움직이느라 꽤나 분주했다.

옷장, 서랍정리를 하다가 세탁을

옷장에서 카메라 가방을 꺼냈는데

메모리카드를 넣어둔 케이스를 어디 뒀는지 죽어도 생각이 안 나서

그거 찾는다고 책상 서랍을 뒤지다 지우개밥이 지저분해서

난데없이 서랍정리를 한다고 발칵 뒤집어 놓고

세 개나 있는 모바일 하드에 뭐가 있는지 컴퓨터에 꽂았더니

오래전 블로그에 썼던 사진 폴더가 있어

블로그를 열었더니 아들이 군대에 갔을 때 쓴 글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나는 그 무렵 인디자인을 배운다고 학원에 다니던 중이었던 것 같다.




20220413잘 지낸다는 말이지?.jpeg


마우스 잡고 도형이다 채색이다 땀 삘삘 흘리는 동안

미확인 문자가 두 개나 와있다.

국군 복지단 4,450원

국군 복지단 12,500원 사용


"누구는 군대 월급 고스란히 모았다가 엄마 밍크코트(?) 사줬다던데?"


지난번 휴가 나왔을 때

출처 미확인된 얘기를 했다가 신용카드 하나 빼았겼었다.

당장 귀대할 차비가 없다며 내미는 손에 신용카드를 덜컥 안겨주었던거다.

아들 군대 보낸 것이 처음이라 깜빡 속았다.

차비, 현금으로 줘도 되고 군인이라도 엄연히 월급통장 체크카드가 있었다.

8만원이라고 했던가?

이병 월급이 그랬고 지금은 일병이라니 월급 좀 올랐으려나?

그 안에서 술을 마실 것도 아니고 친구를 만나러 갈 일 없으니 차비가 들일도 없겠고

고작해야 담배나 군것질 정도가 월급의 주요 용도겠다.

있으면 있는 대로 쓰게 마련인건지

카드사용 문자에 3~4천원

가끔 만원을 조금 넘는 금액이 찍힐 때도 있다.

처음엔 카드 괜히 줘 보내서 씀씀이만 커진 거 아닌가 싶어 걱정스러웠다.

로얄장 면회이후 변변히 전화 한통, 편지 한 줄 없이 벌써 4월이 마무리 되고 있다.

엄마한테 전화 한 번 할 시간조차 없는 와중에도

문득문득 아이가 보고 싶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보다.

카드 사용문자가 그렇듯 반가울 줄 몰랐다.


'훈련 끝나고 군것질 하나보네. 불량식품은 사 먹지 말지...'

'어랏? 금액이 쫌 되네? 내무반에 한 턱 쏘는 날인가?'

'어? 오늘도야? 얘 혹시 삥 뜯기는 거 아니야?'


카드사용 문자를 들여다보며

만나지 못하는 아들하고 대화라도 하듯 하는 모양을 보며

옆에 있던 남편 어이없어 피식 웃는다.

5월엔 꼭 깨끗한 숙소 예약해서

잡채랑 삼겹살 바리바리 싸가지고 면회한번 다녀와야 하려나보다.

지우지 않은 국군복지단 카드사용 문자를 다시 열어봤다.


잘 지낸다는 말이지?

그래도, 지나친 카드사용은 안 된다?


왜 늘,

그리움은 엄마 몫이고

무심한건 자식일까.



2011. 4. 29. 네이버 블로그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바깥은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