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짧은 아버지와의 기억 중에
오랜만에 집에 온 아버지의 손을 기웃거리는 장면이 있다.
“왜애? 뭐 안 사왔냐고?”
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면서 두툼한 외투 주머니에서 버터사탕 한 봉지를 꺼내
내게 주고는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안아주었다.
건설 현장에 근무했던 아버지는 매일 퇴근 할 수 없었다.
그게 한 달에 한 번이었는지 두 달이었는지
아니면 실제로는 일주일이었는데 그게 그냥 길게 느껴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의 손에는 빨랫감 가방도 있었을 테고
엄마에게 줄 선물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건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 들어서면서 언제나 내게 먼저 안겨주었던 꾸러미만이 선명하다.
아버지가 집에 오는 것이 반가웠던 건지
아버지 손에 들린 내 선물을 더 기대했던 건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 때 대여섯 살이었던 나는 매일 아버지를 기다렸었다.
요즘 K는 외출에서 돌아올 때마다
딸기라떼를 사 가지고 와서 무심한 듯 툭 내 앞에 놓는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 딸기 철이 빨리 끝나면 좋겠다던 그가
혼자 운동을 나갔다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혹은 약속이 있어 늦게 집에 오는 날에 조차 그랬다.
어떤 날은 E카페에 파는 딸기연유프라프치노를 사 가지고 올 때도 있는데
거기에는 실제 생 딸기가 들어있었다.
같은 메뉴가 어느 매장에는 있고 어느 곳에는 없다고 했다.
처음 딸기라떼를 들고 들어온 날에는
말 그대로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은 느낌이 그런 거구나 했다.
‘어? 이 남자 쫌 멋진데?’
한 번으로 끝나려니 했던 이벤트는 드문드문 계속 이어졌다.
‘저러다 거덜나는 거 아녀?’
설마 정말로 딸기 철이 끝나기 전에 딸기를 먹어 줘야 한다고
딸기 철은 짧다고 했던 내 말 때문에 그러는 걸까?
라고 생각하니 슬슬 미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됐다.
어느 평일 오후에 걷기 운동을 하다가
딸기 철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그 카페에 가서
드디어 생 딸기 77%라는 그 라떼를 실물 영접했다.
딸기가 칠십칠 퍼센트나 들어갔는지는 조금 의심스럽지만
두 번이나 헛걸음을 하게했던 그 맛은 다행히 만족스러웠다.
딸기 청은 많이 달지도 않고 딸기 입자가 걸리적거릴 만큼 서운치 않게 들어있었다.
본의 아니게 풀지 못한 숙제처럼 여겨졌던 그 것을 달성했으니
사실상 그 때 이미 딸기 철은 끝났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도 K는 딸기라떼를 사다 주었다.
이제는 그가 집에 들어올 때면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K의 손을 먼저 보게 된다.
딸기라떼보다 그 느낌이 좋아서
그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설레기까지 한다.
며칠 전, 조금 뜸하더니 K가 라떼를 들고 들어와
내가 앉아 있는 커피탁자에 올려놓았다.
나도 모르게 헤죽헤죽 웃고 있었는데
낮 기온이 많이 올라 땀이 송글송글 맺힌 채 K가 말했다.
“딸기 철이 사계절인가 봐? 안 끝나네?”
“.........”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딸기 철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고 말해 줬어야 했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밖에 나갔다 들어온 K가
또 딸기 라떼를 사 들고 들어왔다.
이 봄에
나는 평생 먹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딸기라떼를 마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