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일기 (6)
5년 째 격주로 꽃이 온다.
딸이 구독을 해 주었다.
꽃은, 계절과 그 무렵 이슈에 맞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 것이 때로는 갖가지 색들의 조합처럼 화려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소박하고
어느 날은 우아할 때도 있었다.
명색이 꽃이니 예쁘지 않은 적은 없지만
그래도 포장을 여는 순간부터 썩 끌리지 않는 꽃이 들어 있거나
게다가 연거푸 몇 번이나 그런 비슷한 느낌의 것이 계속 올 때면
딸과 마주 앉아서
“디자이너가 바뀌었나? 디자이너가 엑스맨인가?”
하며 다른 꽃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푸른빛이나 흰색으로
혹은 옅은 핑크와 몽글몽글한 흰색계열의 꽃이 오면
그 날 하루는 특별한 사람이 된 것처럼 마음이 들뜨기도 한다.
어제 꽃이 왔다.
핑크 장미와 오렌지 튤립, 핑크 카네이션, 버터플라이 라넌클러스는 예쁜 노란색이었다.
보통은 세 가지 이상 색이 조합돼있는 꽃을 보면 촌스럽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한 눈에 반갑고 사랑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포장을 풀어 꽃병에 꽂고 습관처럼 향기를 맡으려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런데 아무 향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꽃은 생소하다 쳐도 장미가 있는데 왜지?’
다시 장미에 코를 박듯이 하다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냄새를 잃은 지 며칠 됐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불편한 건 없었다.
K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 때마다
후드 켜라, 수돗물 잠가라, 가 내 단골 잔소리 레퍼토리였는데
요 며칠은 저녁마다 내가 요리를 하면서도 환풍기 돌리는 것을 깜박 할 정도다.
어제는 제육볶음을 하면서
냄새를 느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익숙한 음식에 대한 냄새 기억이었던 것 같다.
아침에 커피를 내릴 때면
원두를 갈 때의 커피향이 가장 매혹적인데
새 원두를 갈아 드립을 해서 마실 때까지도 향을 느낄 수 없었다.
커피는?
그냥 쓰고 검은 물이었다.
감각이라는 것이 참 신비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 맛을 느끼는 것 냄새 맡는 것 모두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경험해보고서야 알았다.
냄새가 있어야 할 곳은
꽃이나 커피뿐이 아니다.
음식도 사람도 집도 각각 자기 냄새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제는 일주일동안 세탁실에 방치되었던 무로 깍두기를 담갔다.
간이 맞는지 모르겠다.
냄새가 나지 않으니 새우젓을 더 넣어야 할지 말아야할지 몰라
대충 버무려 넣었다.
짠맛은 새우젓이나 멸치젓이나 소금이나 구분을 못하겠고
단맛은 매실청이나 설탕이나 신화당을 구분 못하겠으니
아무래도 이번 깍두기는 망한 것 같다.
격리 해제일은 진단일 부터가 아니라 검사일 부터라고 한다.
하여 K는 오늘 자정이면 자유의 몸이 되고
따라서 나는 내일 자정이후에는 해제가 된다고 한다.
그나저나
자유가 된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