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늘은 14화

되찾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

by 이연숙


- 내가 라섹했을때가 그런기분이였다니깐

- 세상이

- 보는게 당연한데

- 벽지에 무늬가 잇엇는지 몰랏지뭐야

- 잘보이는게 이렇게나 좋은거였지뭐야


집나갔던 후각이 돌아왔다는 말에

아들이 깨똑창에 폭풍 공감을 쏟아냈다.


격리 해제가 되고도 거의 3주 가까이 냄새가 나지 않았다.

확진 됐던 날 가려고 했던 꽃시장에

해제 되던 날 갔었다.

될수록 큰 로즈마리를 사려고 했는데

화원 앞에 즐비한 것들은 모두 작은 모종뿐이었다.

가게 몇 곳을 지나친 후 드디어 한 곳에서 아주 크지는 않지만

중간 크기의, 잘 다듬어진 로즈마리를 만났다.

달리 예상했던 가격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무척 바쁜 일이 있는 듯 판매에는 관심이 별로 없어 보이는 가게 사장님이

귀찮다는 듯 툭 던진 가격에 멈칫 했다.

파란 색종이로 접어놓은 것처럼 산뜻한 수국가격에 한 번 더 놀라고는

안 놀란 척, 로즈마리 받고 수국 두 개!

를 호기롭게 사 가지고 왔다.

그런데

슬쩍 스치기만 해도 하루 종일 상큼한 냄새가 손에 배어있어야 할 로즈마리가

아무 향이 나지 않는다.


“얘들은 물을 엄청 좋아하니까 바람도 잘 통해야하지만 일단 무조건 물을 자주 줘야 해요.”


말하기에 인색한 화원사장님이 두 번이나 강조한 지침에 따라

날마다 아침이면 화분을 베란다 밖으로 내 놓았다가

저녁이면 들여놓는 것이 새로운 일과가 되었다.

화분을 옮길 때마다

냄새 나라 냄새 나라 하면서 줄기를 어찌나 흔들었던지

이러다 로즈마리 몸살이나 나지 않을까 우려가 될 지경이었다.

찌개를 끓일 때에도 타이머를 맞춰놓지 않으면 끓는지 알아차리지 못했고

봄꽃이 흐드러진 천변을 산책하면서도

빛깔이 고우니 꽃일 뿐 내게는 향기 없는 종이꽃에 다름 아니었다.

인도네시아 만델링이나 예가체프는 똑같이 쓰고 검은 물이었고

길을 지나면서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 냄새도 나지 않으니 좋다 했는데

냄새가 안 난다고 해로운 성분도 없어진 건 아니겠네 싶으니 쓴웃음이 났다.

불편한 건 없었지만 기분은 우울했다.

냄새가 나지 않으니 잘 보이지도 않는 것 같고

맛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판단력도 2~3초 늦어지는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20220501되찾고 나서야-tile.jpg


그 날도 로즈마리를 베란다에 내어놓고는

손바닥으로 거칠게 쓰다듬는(?) 중이었다.

얼핏!

쌉싸레한 향을 느낀 것 같기도 했다.

이번에는 아예 화분에 코를 갖다 댔다.

킁킁거리며 점점 가까이 가다보니 얼굴이 화분에 묻힌 모양새가 됐다.

난다.

이건 분명 냄새의 기억이 아닌

진짜 로즈마리 향기가 분명했다.

내친김에 라벤다향 인센스를 켜놓고 청소를 시작했다.

처음에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것도 향은 못 느끼고 연기에 기침만 났던 것으로 알게 됐었다.

방 안에 매캐한 향이 금세 그득 찼다.


여러분~ 집나갔던 냄새가... 냄새가...


돌아왔어요~~~~~



혼자 흥분해서는 가족 깨톡방에 널리 알렸다.


경축합니다아~


츄콰합니다악


쏴리 질러어!


내가 라쎅 했을 때 그런 기분이었다니깐


.

.

.

- 잃어버려 보기 전에는 몰랐지 모야


집 나갔던 아들이 돌아왔을 때 잔치를 베풀었다는 농장 주인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있을 때 잘 해야 하지만

어리석게도 잃어버린 후 되찾았을 때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지금 지나는 시간들, 내 곁에 있는 사람들

나무와 꽃과 바람과 계절 흙 물 단추

모두 그냥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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