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늘은 13화

오빠와 삼립크림빵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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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인가 3년 만인가? 암튼

오랜만에 K가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러 원주에 간다고 했다.

그 시절 똑같은 검정 교복 속에 감추어졌던 10인의 멤버들은

40년이 지난 지금, 다양한 곳에서 제각각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

그 중 이 번에는 원주에 사는 친구 집 근처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단다.

그 멤버 중에 나의 오빠가 있다.

즉, K는 내게는 오빠 친구이고

나는 K에게 친구 동생이다.

원주에 가는 날, 각자 사는 지역에서 가까운 친구끼리 카풀을 하기로 했는데

수원에 사는 오빠와 K가 커플(?)이 됐다고 했다.

일찌감치 1박용 간단한 짐을 챙긴 후

숙소가 산 속에 있어 아침을 사 먹기도 애매하다며

아침에 끓일 콩나물 해장국 재료를 싸고

집안일을 미리 건사하는 K는 살짝 들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방 정리를 하다가 전 날 사다 놓았던 크림빵이 눈에 띄기에

만나는 시각이 애매하니 이 거 가지고 가서 간식으로 먹으면 되겠다고

K 방 쪽을 향해 말했다.

대꾸가 없다.

조금 후 방으로 가보니 이미 뭔가를 먹고 있다.

크림빵이다.

오빠가 크림빵, 그것도 삼립크림빵을 좋아하니

그거 가지고 가서 둘이 먹으면서 가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말한 건데

그걸 혼자 먹고 있냐고 말하다가

말하면 뭐하냐 싶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미있었던 건

그 날 오빠도 편의점에서 크림빵과 단팥빵을 하나씩 샀더란다.

원주에서 한 시 반에 만나기로 했으니

점심 먹을 시간이 애매하게 느껴진 건 K뿐이 아니었던 거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공무원에서 대기업으로 전직을 하니

월급이 무려 다섯 배나 많아졌더라고 했다.

아버지는 금방이라도 부자가 될 것처럼 희망에 찼고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엄마도 덩달아 행복했다고 한다.

어느 날 아버지가 식구들을 앉혀놓고

뭐가 제일 갖고 싶으냐고 물었더란다.

그 때 오빠는 그냥 크림빵도 아니고 삼립크림빵!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섯 살 무렵이었을 나는 피아노라고 했고

아직 말이 어눌했던 동생은 건너뛰고

엄마는 ‘당신만 일찍 들어오면 된다’ 고 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장면이 아니지만

이 얘기는 사촌 언니들과 이모들까지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짠한 스토리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내 대답은 세상 실속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아무리 월급을 많이 받은 들

피아노란 게 그리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던 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그 스토리를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종이피아노를 그려주거나 플라스틱 장난감 피아노를 사주는 등으로

내게 애잔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었다.

그에 비해 삼립크림빵은 길거리에 가다가 아무 가게나 들어가도 흔하게 있었다.

실제로 아버지가 오빠에게 크림빵을 자주 사 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찌됐든 오빠는 매우 현명한 선택을 했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비싼 소원보다

언제라도 가질 수 있는 평범한 바람을 말할 줄 알았던 거다.


사실 삼립크림빵은 나도 좋아한다.

입맛이 저렴해서인지 지금도 베이커리에서 파는

부드럽고 풍부한 버터크림빵은 느끼해서 싫은데

풍미 없는 빵에 미끌거리는 크림이 들어있는

공장출신 그 크림빵은 볼 때마다 입에 침이 고인다.

하여 창고형 마트에 갔을 때 K가 무려 여덟 개가 들어있는 한 박스를 사자고 했을 때

못이기는 체 카트에 밀어 넣었던 거다.


오빠도 엄마처럼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을까?

오래 전 포장 그대로인 크림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촉촉해지는 나처럼

오빠도 그 시간들이 그리운 걸까?

다음에 오빠를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오빠는


“우리 장남은 뭐가 제일 갖고 싶어?”


라고 물었던 아버지의 목소리를 실제로 기억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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