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늘은 12화

고모지만 시누이였지

가족, 문득 그립고 때로 서러운 이름

by 이연숙


큰고모는 범띠였는데 성격이 실제로 호랑이 같다고 했다.

재미있는 건 고모부는 한 살 연하 토끼띠 였다는 사실.

하지만 두 분은 팔순잔치까지 하면서 오래오래 사이좋게 해로 하셨다.

지금도 기억하는 큰고모의 모습은 쪽을 진 머리에 목소리가 걸걸하고 웃음소리가 호탕했다.

고모의 육순잔치를 진관내 어디쯤 식당에서 한다고 했을 때 식구가 모두 갔었다.

작은아이를 업고 식당 유리문을 들어섰는데 미처 닫히지 않은 문 사이에 아이 손가락이 끼어

막 돌을 지난 아이가 손가락 깁스를 하는 상황이 있었던 터라

고모를 생각하면 아이의 애처로운 초록색 깁스 테이프가 같이 떠오르고는 한다.

큰고모 말고도 아래로 고모가 세 분 더 있었는데

고모들 표현으로 ‘금쪽같은’ 막내 동생이 어느 순간 ‘불쌍한’ 동생으로 바뀐 후로

고모들은 우리를 만날 때마다 울었다.

그게 어느 정도 지나다보니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됐는데

일 단계, 만난다, 이 단계, 덥석 손을 잡는다.

삼 단계


“으이고, 불쌍한 거, 우리 동상이 제일 똑똑했는데, 고생만 하다가.....”


그리고는 곧바로 주름이 자글자글한 눈에서 말 그대로 닭똥 같은 눈물이 후드득 쏟아지는 데 까지 순식간이다.

그리고는 언제 울었냐는 듯 멀쩡한 표정으로 다른 얘기를 한다.

그러다 또 아버지 얘기가 나오면 저절로 열린 수도꼭지처럼 다시 눈물이 한 여름 빗줄기처럼 쏟아졌다.

그 무렵 나는 친척 어른들이 나를 볼 때의 애잔한 눈빛들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때로는 즐거운 자리에서조차 우리 삼남매를 발견하면

으레 그러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불쌍하고 측은한 눈빛을 장착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 꽤 익숙해졌으면서도 고모들의 속성 눈물바람은 볼 때마다 신기했다.

어찌됐든 나는 그런 고모들이 좋았다.

보통은 고모보다 이모와 친밀하다고 하는데 내 경우는 이모 셋 중 엄마 바로 위 이모 말고는

이모들과의 정이 없을 뿐 아니라 특히 막내이모와는 서로 싫어한다.

그런 나와는 달리 사촌 언니들은 고모들을 싫어했다.

특히 막내 고모는 언니의 엄마, 즉 큰엄마에게 잔소리를 한다고 내가 막내이모를 싫어하는 것 이상으로 싫어했다.

생각해보니 내게는 고모지만 엄마에게는 시누이였다.

나도 언니들처럼 고모를 싫어했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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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유로 거의 십 년 만에 아버지 제사에 갔다.

그 사이 결혼 전에 살았던 집은 재개발이 되어 동네가 사라졌고

아버지 산소가 있는 선산 터를 지키던 소나무는 너무 굽은 허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밑동이 부러졌으며 뼈대있는(?) 가문이라 연체생물을 제상에 올리지 않는다던 큰아버지의 원칙과 달리 알맞게 잘 삶아진 문어가 제사상에 올라와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따로 있었다.

오빠네 집에는 그 사이 식구가 하나 늘어있었는데

작년 11월 태어남과 동시에 나를 빼도 박도 못할 할머니로 만들어 주었던 아기가

벌써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거다.

그 작은 아이가 한 집안에 끼친 영향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낮 최고기온이 34도를 찍은 날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제사 음식을 만드는 와중에도

채소 다듬다, 전 부치다, 탕 끓이다 아이 한 번씩 어르는 어른들이

어째 안 본사이 죄다 아이 바보가 된 것 같다.

한술 더 떠 우리 집 K 할아부지는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아이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장을 완전해제 한 것 같았다.

‘저 사람한테 저런 표정이 있었나? 저 소리가 저 남자한테서 나오는 소리라고?’

보고도 믿기지 않는 거실 풍경을 보며 나는 그냥 헐헐 웃음이 나왔다.

9개월에 들어선 아이는 막 낯가림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낯선 사람에게 덥석 안기지 않는 것은 물론, 뚫어질 듯 눈길을 떼지 않는다.

그러다 행여 낯선 사람이 알은체라도 할라치면 고개를 훽 돌리고

혹여 안아보기라도 하려면 얼굴을 찌그러뜨리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만다.

낯가림이라면 나도 알만큼 아는 터라 섣부르게 다가가지 않았다.

어쩌다 눈이 마주쳤을 때 제 할아버지처럼 쳐진 눈꼬리를 어필하며 웃어주었을 뿐

꼭 끌어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함부로 표현하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먹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웃으니까 아이가 나를 보고 웃는다.

그러더니 손을 뻗어 내게 오려고 한다.

얼결에 받아 안았는데 신기하게도 아이는 편안한 자세로 태평하게 안겨있다.

아이를 안아본지가 몇 십 년은 됐을 터라, 조금은 조심스러웠고 그보다 많이 설레고 벅찼다.

모르긴 몰라도 할머니가 외동딸이라 이모할머니는 없으니

이 아이도 나처럼 고모할머니가 좋은 모양이라고 내 멋대로 생각했다.

그러다 이내 겸손해졌다.

어차피 나도 제 친할머니에게는 시누이 아닌가.

하긴, 시누이든 고모할머니든 살면서 몇 번이나 아이를 보게 될까 생각하니

괜한 헛물을 켰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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