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늘은 11화

엄마를 보듯 꽃을 보겠네

가족, 문득 그립고 때로 서러운 이름

by 이연숙



지난 번 주신 고추장아찌를 맛있게 먹었다고 하면 장아찌 병을 통째로 주셨다.

열무 물김치가 어머니가 하신 것처럼 맛있게 되지 않는 다고 했더니

그 길로 마트에 가서 열무, 얼가리 다섯 단씩 사다가 순식간에 담가 한 통을 주셨다.

고구마 다 먹었냐고 물어서 아직 조금 남았지만 거의 다 먹었다고 했더니

창고 방에 있던 고구마를 노란 플라스틱 박스째 차에 실으라고 하셨다.

일흔 살 늦은 나이에 시골로 내려가 방을 다섯 개나 들여 집을 짓고

집 앞 공터를 밭으로 일구며 산다고 하신 이유가

자식들 모이면 재우고 먹이다가 돌아갈 때 싸 보낼 뭔가를 키우려는 생각이었을 터다.

시아버지 건강이 나빠지면서 집안일에 밭일까지 혼자 하게 됐을 때 어머니는


“나이 들어서 시골 내려오는 게 아니었어. 남자가 도와주지 않으면 시골에 살 수가 없어.”


라고 하셨다.




전에 살던 집은 4층 빌라의 1층이었다.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나와

시골에 있더라도 반드시 아파트에 살아야겠다는 K와의 절충안이었다.

그 집으로 이사한 이듬해에 어머니 집 마당에서 작약과 패랭이를 한 뿌리씩 가져다

뒤 베란다 쪽 화단에 심었었다.

신통하게도 봄이 되자 뾰족뾰족 순이 솟아났고 초여름쯤에는 분홍색 꽃도 피워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작 꽃이 필 무렵에 연속 두 해나 장기 여행 중이었다.

K와 내가 여행 전성기를 보내느라 꽃이 피는 과정을 제대로 보지 못한 셈이었다.

패랭이꽃은 소박하면서도 선명한 빛깔로 첫 해에 한 번 피고는 다시 피지 않았지만

작약은 봄마다 어김없이 싹을 틔었고, 건물 사이로 들어오는 인색한 빛을 받은 탓인지

꽃송이를 겨우 떠받치는 것처럼 보이는 가느다란 줄기가 애처로웠다.

작년에 이사를 하면서 키우던 화분을 대부분 정리했었다.

뒤 베란다 화단에서 튤립 세 뿌리를 화분에 옮겨 가져오면서도

작약이 화분에서 자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두고 왔다.

몇 달 거리로 어머니 집도 이사를 했다.

방 다섯 개에 화장실 세 개가 있던 집에

어머니 뜻대로 자식들이 방을 그득 채웠던 적은 채 열 번이 되지 않은 것 같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각자 일이 바빠지면서

집안 행사나 명절에조차 점차 일정이 어긋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 이상 휑하게 큰 집을 건사할 이유가 없어 집 크기에 따라 짐도 줄였다.

이사한 새 집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미처 챙기지 못한 물건들에 대한 아쉬움을 얘기하셨다.

그 중 어머니가 아끼던 꽃나무들이 있었다.


“그러게요, 꽃이 참 많았죠. 저희도 이사하면서 작약을 못 가져온 게 아쉬워요. 되든 안 되든 화분에라도 심어 가져올 걸 그랬나 봐요.”


정말 맹세코 고추장아찌를 더 달라거나 열무 물김치를 담가 달라거나 고구마를 달라는 사심이 있었던 게 아니었던 것처럼 작약이 욕심나서 했던 말이 아니었다.

더구나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시누이에게서 어렵게 구한 백작약 한 뿌리 가격이 십만 원이 넘는다는 말을 듣고서야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을 수가 있었겠나.

그런데 어머니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작약 좀 파갈래?”


하시는 말을 재차 묻고서야 알아차렸다.


“아유 무슨 작약을요, 베란다도 없는데 화분에 키우다 죽기나 하면 어쩌라고요.”

“죽으면 죽는 거지 뭐.”


이미 어머니는 호미로 작약 밑동주변 흙을 파기 시작했다.

그냥 두시라고 한 들 어머니를 말릴 수 없다는 건 사실이고

어설픈 선무당이 행여 뿌리를 다칠까봐 땅을 파겠다고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멍하니 지켜볼 수만도 없어 안절부절 못했다.


“삽 좀 가져와봐.”


냉큼 연장들이 꽂혀있는 창고 쪽으로 갔지만 내가 아는 삽 모양의 도구는 보이지 않았다.

겨우 발견한 것이 마당 쓸 때 쓰는 부삽.

그걸 본 어머니, 휑하니 가시더니 바로 날렵한 등산용 삽을 가져오신다.

땅이 단단한 건지 뿌리가 엉킨 건지 한참을 씨름을 하다가 급기야 뿌리를 떼 냈는데

땅속에 남은 뿌리와 반으로 쩍 갈라져 떨어진 뿌리가 처참했다.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르는 나와는 달리 어머니는 쿨하게 비닐 봉투에 담더니

분홍 작약도 가져가라며 옆에 있는 흙을 또 파기 시작한다.

집에 오자마자 넓은 시루형 화분을 주문하고

행여 마를세라 로즈마리 화분 하나 비워서 흙에 꽂아 두었다.

다행히 바로 이틀 만에 배송이 돼서 옮겨 심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조마조마 했다.


20220917엄마를 보듯 꽃을 보겠네.jpg


화초에 관한한 내가 부탁을 하는 경우가 아니면 관심이 없던 K가

요즘은 작약의 안부를 자주 물으며 가끔 한 번씩 들여다보기도 한다.

다행히 새 화분에 잘 자리를 잡은 것 같은 작약이

내년 봄에는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세상에 계시지 않을 때

K는 어머니를 보듯 꽃을 보겠구나.‘


‘그럼 나는

초고층 아파트에 살던 엄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엄마가 보고 싶으면 무얼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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