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늘은 09화

신발과 함께 떠나보낸다.

오늘은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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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 때 좋았던 점 중 하나가 신발 사기였다.

발모양이 볼이 넓고 펑퍼짐해서

한국에서는 신발을 살 때마다

처음 신으면 으레 물집이 잡히거나 끼는 느낌을 당연하게 감수해야만 했다.

발가락 샌들은 민망해서 신지 못하기도 했지만

신고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발가락 사이가 아프다가 결국은 허물이 벗겨지기 일쑤였다.

한 때 대한민국이 신발 수출 강국이었던 시절도 있었으니

이 나라 신발 품질이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야 오죽하랴 싶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미국의, 옷은 몰라도 신발은 편안했다.

게다가 한국에서라면

진열대에서는 예쁘고 깜찍하던 신발이

내 사이즈를 찾아 신어보면 희한하게 못생겨지는 경험을 했던 터라

내 발이 크고 못났다는 열등감이 있었다.

미국 신발 가게에서 내 발은 완전 쪼꼬미였다.

여성 신발 코너에서 내 사이즈는 작은 쪽에 훨씬 가까웠고

그 위로도 까마득하게 큰 사이즈가 무궁무진하게 쌓여있었다.

심지어 굽 높은 댄스슈즈조차 편했다.

내게는 그야말로 신발 천국이었다.

아울렛에 갔을 때 나이키 에어를 비롯해서 발가락 샌들 뉴발란스 워킹화 탐스 반스 등등

한 번에 무려 다섯 켤레나 산 적이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주로 나이키 에어를 신고 다녔는데

옷이든 신발이든 입던 옷 신던 신발만 신고 다니다보니

결국 발뒤꿈치가 무너지고 발이 굽어지는 볼 양쪽이 헤졌으며

밑창이 닳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K는 새로 하나 사고 그거 좀 버리라고 성화였는데

내게 그 것은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추억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그 신발을 버리고 같은 브랜드의 새 신발을 샀다.

여행 떠날 때 신으려고 커플 신발을 K와 한 켤레씩 샀는데

나보다 활동량이 많은 K의 것은 벌써 오래 전에 낡아 버렸지만

내 것은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오래 신어서인지 소재가 메시라 쉽게 망가진 건지

언젠가부터 발등이 접히는 부분에 조금씩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엔가는 그 구멍으로 양말 색이 보이는 것을 보고

K가 역시나 그 신발 이제 버리라고 한다.

이 신발을 신고 파리와 스페인에 갔었다.

보병 출신 K의 무지막지한 강행군으로

파리 도착 첫날 걸음 수는 3만을 넘었고 새끼발가락에는 풍선만한 물집이 잡혔었다.

어쩔 수 없이 계획에 없던 신발 쇼핑을 해야 했다.


러시아에도, 동생 커플과 함께 했던 동유럽여행에도 이 신발을 신었었다.

여행에 함께 했던 물건은 옷도 있고 캐리어 카메라 휴대폰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유독 신발의 의미는 다르게 느껴진다.

네 식구가 쓰던 신발장을 둘이 쓰는 데도

전처럼 겹쳐놓고 쌓아놓는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공간이 여유롭지는 않다.

이사하면서 꽤 많은 신발을 처리했는데도

계절별 용도별 신발들은 제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 아이들이 왔다가 오늘 아침에 모두 가고 나니

언제나 그랬듯 늘 보던 공간이 더 크게 느껴진다.

K와 걷기 운동을 나섰다.

아침에 비도 왔고 해서 오랜만에 낡은, 그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밑창 쪽에 틈이 생긴 건지

아니면 발등의 구멍 때문인지

걷다가 몇 번씩 털었는데도 자꾸 신발 속으로 모래가 밟힌다.

왕복 6킬로미터를 걷기로 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7킬로미터를 넘게 걸었다.

이 신발과의 인연은

오늘 하루 만 걸음을 걸은 것까지로 해야겠다.

신발을 하나씩 떠나보낼 때마다

나의 지난날도 함께 떠나는 기분이다.

어쩐지 신발이 내 몸의 일부였던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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