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국에 살 때 좋았던 점 중 하나가 신발 사기였다.
발모양이 볼이 넓고 펑퍼짐해서
한국에서는 신발을 살 때마다
처음 신으면 으레 물집이 잡히거나 끼는 느낌을 당연하게 감수해야만 했다.
발가락 샌들은 민망해서 신지 못하기도 했지만
신고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발가락 사이가 아프다가 결국은 허물이 벗겨지기 일쑤였다.
한 때 대한민국이 신발 수출 강국이었던 시절도 있었으니
이 나라 신발 품질이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야 오죽하랴 싶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미국의, 옷은 몰라도 신발은 편안했다.
게다가 한국에서라면
진열대에서는 예쁘고 깜찍하던 신발이
내 사이즈를 찾아 신어보면 희한하게 못생겨지는 경험을 했던 터라
내 발이 크고 못났다는 열등감이 있었다.
미국 신발 가게에서 내 발은 완전 쪼꼬미였다.
여성 신발 코너에서 내 사이즈는 작은 쪽에 훨씬 가까웠고
그 위로도 까마득하게 큰 사이즈가 무궁무진하게 쌓여있었다.
심지어 굽 높은 댄스슈즈조차 편했다.
내게는 그야말로 신발 천국이었다.
아울렛에 갔을 때 나이키 에어를 비롯해서 발가락 샌들 뉴발란스 워킹화 탐스 반스 등등
한 번에 무려 다섯 켤레나 산 적이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주로 나이키 에어를 신고 다녔는데
옷이든 신발이든 입던 옷 신던 신발만 신고 다니다보니
결국 발뒤꿈치가 무너지고 발이 굽어지는 볼 양쪽이 헤졌으며
밑창이 닳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K는 새로 하나 사고 그거 좀 버리라고 성화였는데
내게 그 것은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추억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그 신발을 버리고 같은 브랜드의 새 신발을 샀다.
여행 떠날 때 신으려고 커플 신발을 K와 한 켤레씩 샀는데
나보다 활동량이 많은 K의 것은 벌써 오래 전에 낡아 버렸지만
내 것은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오래 신어서인지 소재가 메시라 쉽게 망가진 건지
언젠가부터 발등이 접히는 부분에 조금씩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엔가는 그 구멍으로 양말 색이 보이는 것을 보고
K가 역시나 그 신발 이제 버리라고 한다.
이 신발을 신고 파리와 스페인에 갔었다.
보병 출신 K의 무지막지한 강행군으로
파리 도착 첫날 걸음 수는 3만을 넘었고 새끼발가락에는 풍선만한 물집이 잡혔었다.
어쩔 수 없이 계획에 없던 신발 쇼핑을 해야 했다.
러시아에도, 동생 커플과 함께 했던 동유럽여행에도 이 신발을 신었었다.
여행에 함께 했던 물건은 옷도 있고 캐리어 카메라 휴대폰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유독 신발의 의미는 다르게 느껴진다.
네 식구가 쓰던 신발장을 둘이 쓰는 데도
전처럼 겹쳐놓고 쌓아놓는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공간이 여유롭지는 않다.
이사하면서 꽤 많은 신발을 처리했는데도
계절별 용도별 신발들은 제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 아이들이 왔다가 오늘 아침에 모두 가고 나니
언제나 그랬듯 늘 보던 공간이 더 크게 느껴진다.
K와 걷기 운동을 나섰다.
아침에 비도 왔고 해서 오랜만에 낡은, 그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밑창 쪽에 틈이 생긴 건지
아니면 발등의 구멍 때문인지
걷다가 몇 번씩 털었는데도 자꾸 신발 속으로 모래가 밟힌다.
왕복 6킬로미터를 걷기로 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7킬로미터를 넘게 걸었다.
이 신발과의 인연은
오늘 하루 만 걸음을 걸은 것까지로 해야겠다.
신발을 하나씩 떠나보낼 때마다
나의 지난날도 함께 떠나는 기분이다.
어쩐지 신발이 내 몸의 일부였던 것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