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주일에 3일 K의 일정 중 수요일은
오전에 음식을 조리해서 그 것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집에 오는 날이다.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보통 세 시에서 네 시사이쯤 된다.
그런데 오늘은 열두 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집에 오고 있다는 톡이 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L이 죽어서, 라고 했는데
글자에서조차 지금 K가 충격을 받은 상태라는 것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친구라고는 고등학교 친구 몇 명
그리고 살 던 동네에서 알게 된 후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 두어 명이 전부인 나에 비해
K는 친구 층이 촘촘하면서 탄탄하다.
어느 친구가 가장 가깝다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가장 오래 되기로는 성당 마당을 놀이터 삼아 지내던 성당 주일학교 친구들 일 테고
밉네 곱네 하면서 끈끈한 정이 쌓인 친구들은 고등학교 동창일 것이며
경쟁을 통해 만났고 보이지 않는 경쟁을 유지해야하지만
사실상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친구는 단연 직장 동기들일 수밖에 없다.
L은 K의 직장 동기였다.
입사를 같이 했고 30여 년 간 같이 일하다가
지금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퇴직을 하는 동기들 중 한 명이다.
누구도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것이 마땅할 사람은 없지만
그게 L이라는 것이 놀라운 것은 사실이다.
그는 직장 산악동호회장을 할 정도로 등산을 좋아했고 자주 다녔고
날렵한 몸에 얼굴 또한 강하고 단단한 인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띄엄띄엄 K를 통해 전해들은 이야기만으로도
그는 취미부자에 재주도 많고 성격도 무난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오래 전에도 K의 절친이 세상을 떠난 적은 있었다.
황당하고 놀라운 사건이기는 했으나 지금 느낌은 그 때와 다르다.
옆에서 보는 내가 그럴 정도이니 K는 어떤 마음일까.
부고를 듣고 나서 손이 떨리더란다.
도저히 수업을 이어갈 수 없어 먼저 나왔다고 했다.
공감능력 부족에
자기감정을 자기가 잘 모른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K였다.
3년 전 친구의 부고를 들었을 때
나 역시 후유증이 생각보다 오래 가서 당황했었다.
특별히 친했던 것도 아니고
자주 연락하며 지냈던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그런 것이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한 동안 친구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
그를 같이 알던 친구들과 그 얘기를 했다.
아마도 같은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이라
기억하지 못하는 서로의 모습을
가장 많이 아는 사이라서 일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에게 그 친구가 그렇듯
K에게는 L이 그런 의미일 수도 있겠다.
언뜻 다른 동기와 통화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임 회비에서 가족들의 경조사에 대한 지급기준은 있는데
본인 상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선례로 기준을 정해야지, 이런 일이 또 있지는 않겠지만...”
K는 허둥대고 있었다.
‘이런 일’이란 게 퇴직 시점처럼 앞서거나 뒤설지는 몰라도
일어나지 않을 일은 아닌데.
옷을 갈아입고
다녀오마고 집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이
어느 때보다도 헛헛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