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만삭이 되었을 때에야 의사가 조심스럽게 아이의 성별을 말해주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헤실헤실 웃음이 나오는 나를 보며
의사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
좋죠, 당연하죠, 딸이라니 세상에...
정기검진 받고 나올 때마다 병원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 좌판에서 떡볶이를 먹었던 탓인지
아이는 떡볶이를 진심으로 좋아한다.
아이들 자라는 과정이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많은데 비해
작은 아이의 임신에서 출산까지의 과정은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스스로 쳐 놓은 벽에 갇혀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그 때 아이가 집에 왔고 놀랍게도 아이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다.
입시를 치르느라, 과제에 치이느라 늘 안쓰러운 모습이었던 아이가
때로 친구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고
마땅히 엄마로부터 받았어야 할 위로와 사랑을 아이가 내게 주었다.
이런 일이 내게도 생겼다는 게 신기했다.
온전한 내 편이 어디선가 툭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어쩌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로부터 나도, 엄마도 나에게서 각각 독립을 해야 한다고 아이가 톡에 썼을 때
‘독립은 이미 대학 기숙사 생활을 할 때부터 시작한 거였더라’ 고 입속으로 우물거렸다.
그 때는 몰랐다.
삼학년이 되어 자취할 방을 보러 다닐 때에도
편의상 잠시 떨어져 사는 거라 여겼으므로 집에서 쓰던 살림을 나눠 보냈었다.
그게 사실상 부모로부터 처음 독립하는 상황인 줄 알았다면
보송한 새 침구와 예쁜 그릇들 아기자기한 가구로 채워줬을까?
시간이 가면서, 한 걸음 세 걸음 열 걸음씩 거리를 벌려야 할 때를 지금보다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조금 덜 황망하고 조금 더 빨리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을까?
졸업전시 준비로 바쁜 아이 대신
나의 첫 유럽 여행이자 아이와 단 둘이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 준비를 할 때만 해도
앞으로 그런 날은 깨알처럼 많을 줄 알았다.
이건 시작일 뿐이라고 의기양양했었다.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를 소개한 이 후
그 시작이 바로 마지막이 되었다는 것을 얼결에 받아들여야 했다.
아이가 결혼을 하던 날
전날 내 침대에서 같이 자면서 벗어놓은 수면양말과 플리스 겉옷을 빨래 통에 넣으면서
이제 집으로 퇴근하지 않을 만큼 거리를 둬야하는구나 생각하는데 가슴 한 켠이 시렸다.
두 블록 거리에 살다가 멀리 지방도시로 떠났을 때
물리적인 거리보다 정서적인 거리도 따라 벌어진 것을 받아들이느라
마음이 분열하는 것 같았다.
사서 먹으면 된다며 이제 더 이상 집에서 양념을 가져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주말마다 오던 영상통화가 뜸해지기 시작했을 때
내가 모르는 아이의 일상이 아는 것보다 훨씬 많아졌다고 느꼈을 때
아이와의 거리는 성큼성큼 멀어져
이제는 아득한 옛날이야기처럼 여겨진다.
엄마의 마음이 힘든 얘기를 듣다가 아이의 마음이 힘들어진 것 같다.
아이인들 책임져야하고 마음 써야할 일들이 없을 리 없다.
내가 엄마에게 보호받지 못했던 것처럼
나 또한 아이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가책이 마음을 짓누른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멀어져야 아이가 힘들지 않을 만큼의 거리가 유지될까?
무더위만큼이나 치열했던 7월이 다 지나갔다.
어제나 다를 것 없는 내일일 뿐이지만
기댈 곳 없는 헛헛한 마음을 새 달에 넌지시 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