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꽃이 밥으로 보였을까?”
오월 초, 엄마를 모시고 동생네 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벚꽃은 졌고 장미는 아직 피기 전이었는데
길 양 옆으로 가로수처럼 죽 이어진 나무마다 하얗고 잔잔한 꽃이 함박 피어있었다.
K가 물었다.
“저게 이팝나무인가? 난 조팝나무하고 이팝나무 구분을 못하겠더라?”
“나도 확실하게는 모르는데
키 큰 나무는 이팝이고 조팝나무는 키가 작은 걸로 알고 있는데.”
“저거 이팝나무야.”
뒷좌석에 앉아있던 엄마가 K의 궁금증을 단박에 해결해주었다.
그러더니
“옛날에 한 여자가 가난 한 집으로 시집을 갔는데
워낙 찢어지게 가난해서 풀죽을 쒀서 식구들 먹이고 나면 며느리는 먹을 게 없는 거야.
며칠을 굶었는지도 모르는데 밭에서 일을 하다 고개를 드니
나무에 하얀 쌀밥이 매달려 있더라지.
그래서 정신없이 따 먹었다는 거야.
세상에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라며 안쓰럽다는 듯 목소리까지 촉촉해졌다.
그러고 보니 자동차 전용도로 옆으로 가로수가 온통 이팝나무였다.
은행나무는 줄이고 새로운 가로수종으로 이팝나무가 결정된 건지
원래 그 주변에는 그 나무가 많았던 건지는 모르지만
길이 바뀌고도 한동안은 눈이 덮인 것 같은 이팝나무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엄마는 밥심으로 산다는 말을 자주 했다.
언제 굶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간을 살기도 했고
군것질 거리가 많지도 않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 끼 밥을 거르지 않게 하기에도 마음이 바빴던 것을 안다.
그렇다보니 나를 비롯해 오빠와 남동생은 저녁밥을 먹은 후
뭘 먹으면 오히려 속이 불편한 데 비해
각각의 배우자들은 저녁을 먹고 나서 과일을 먹거나
밤이 깊어지면 라면 등 야식을 먹는 것이 익숙한 모양이었다.
어렸을 때 엄마의 유일한 먹거리 사치는 계란프라이였다.
달걀이 완전식품이라는 것을 알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엄마는 아침마다 달걀 세 개를 부쳐 프라이팬 째로 상 위에 올렸다.
노른자가 세 개 있으니 세 개를 부쳤다고 아는 것이지
흰자는 팬 위에서 서로 섞여 한 판을 이룬 모양새였다.
어느 날 아침, 우리만 먹는 것이 미안해서
나는 느끼해서 안 먹겠다고 엄마 먹으라고 했다.
딸의 효심도 모르고
엄마는 다음 날부터 달걀을 두 개만 부쳤다.
그 후 엄마에게 나는 달걀 싫어하는 아이가 되었다.
(내가 달걀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 때에는 시골에서 오는 쌀이 네 가마였다.
엄마 뿐 아니라 밥을 많이 먹기는 삼남매도 마찬가지 였다.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반찬이 더 풍성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래봐야 초등학생이었던 우리들 중
밥을 한 공기로 끝냈던 아이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난 늬들 밥 굶긴 적은 없다.”
는 엄마의 오래된 단골 멘트다.
엄마가 밥을 굶긴 적은 없지만
도시락 싸기 귀찮아서 점심을 건너 뛴 적은 많다.
그런데 학기가 바뀐 후 새 짝꿍이
도시락을 싸오지 않은 나에게 자기 도시락 반을 갈라 나눠주었다.
친구에게 미안해서 다음 날에는 도시락을 싸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
귀찮아서라고 했지만 실은 쌀 수 있는 반찬이 김치와 무말랭이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무말랭이 반찬을 원래 싫어했는지
그 때부터 싫어하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지금도 무말랭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뽀얀 얼굴에 웃는 얼굴이 화사했던 짝꿍은
이후로도 매일 내게 도시락을 나눠주었다.
집에 밥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매일 도시락을 얻어먹는 것이 편치 않은 와중에도
나는 점점 친구의 도시락에 익숙해져갔다.
언제까지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 보는 드라마에서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은희는 집이 가난해서 도시락을 싸오지 못했는데
부잣집 친구 미란이 아예 은희의 도시락을 따로 싸 왔다.
어느 날, 소시지부침 없냐고 하자 미란이 은희의 도시락을 통째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얻어먹는 주제에 반찬투정 한다며.
그 일은 은희에게 상처로 남았고 미란은 기억하지 못했다.
내 짝꿍과 나의 도시락 결말은 어떻게 났을까?
뒤끝이 워낙 길어서 때린 건 몰라도 맞은 걸 잊어버렸을 리 없으니
친구가 미란이 처럼 내게 상처를 줬을 것 같지는 않다.
그 친구는 그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날 엄마에게 이팝나무전설을 듣고 나서 보니
우리 단지에도 여기저기에 그 나무가 꽤 많았다.
문득 화사한 이팝꽃이 그 친구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이팝나무를 볼 때마다 배고팠을 며느리를 떠올리듯
나는 이후로 해마다 이 맘 때쯤이면 그 친구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