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원이 대체 어디서 난 거야?

오늘은

by 이연숙

신혼 초에는 해마다 연말이면 K가 은행 가계부를 가져다주었다.

처음엔 열심히 적었다.

열심히 가계부를 쓰는 나를 보며

지인은 어차피 들어오고 나가는 거 뻔한데 뭘 그렇게 열심히 쓰냐고 했다.

그런다고 어디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라며.

아닌 게 아니라 그랬다.

시어머니가 결혼자금으로 미리 당겨 쓴 돈을 갚느라

손에 쥐어지는 월급은 딱 절반 이었으니

매 달 적자가 나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철저하게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보통은 돈이 주체할 수 없이 많은 경우라야 가계부를 쓰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약 10년간 썼던 낡은 가계부 뭉치가

이사할 때마다 어느 구석에선가 모습을 드러내고는 한다.

버려야지 하면서도 어찌어찌 또 어느 짐 속에 묻어 들어가 새 집으로 온다.

케케묵은 급여명세서까지 부록처럼 따라온다.


몇 년 전에 K2가 알려준 가계부 어플을 알고 난 후에는

그야말로 신세계로 들어선 기분이었다.

종이 가계부를 쓸 때 가장 고민되던 것이 현금과 신용카드지출을 구분하는 것이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면서 생긴 지출을 바로 지출로 해야 할지

대금 결제 시점으로 할지가 너무 어려웠는데

어플에서는 애초에 시점을 선택해서 결제까지 자동 기록이 된다.

일일이 계산기를 두드릴 필요가 없음은 물론이고

수입과 지출 항목도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잘 구분이 돼있다.

한 달은 1일부터 시작하는데 월급날은 21일이라 애매하던 결산 날짜도

모바일 어플에서는 애초에 결산시점을 급여일로 지정할 수 있고

키워드를 검색하면 오래전 사용됐던 지출내역도 바로 볼 수 있다.

가계부 영역 번외로,

오래전 지출을 보면서 잊고 있던 그 때 일들까지 감자덩굴처럼 따라 올라오기도 한다.

요즘처럼 오늘 아침에 한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때는

가계부가 다이어리 역할도 하는 셈이다.

카드 사용문자를 그대로 복사해 붙여 넣을 수 있으니

오타로 인한 차액이 생길 일도 없다.

결혼 후 약 10년 이후,

아이들 교육비에 내 집 마련 등으로

정작 지출이 가장 극심했던 시절에는 가계부를 쓰지 않았었다.

이런 게 그 때 있었으면 좋았겠다, 하는 아쉬운 마음까지 들었다.

어쨌거난 이제라도 이런 거 만든 사람 어깨라도 두드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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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렇게 열심히 해?”


밥 때가 됐는데도 밥 할 생각은 안 하고

안경까지 쓰고 휴대폰을 붙잡고 씨름하는 나를 보며 K가 물었다.


“어, 가계부가 안 맞아서. 1원이 대체 어디서 난 거지?”


가계부 잔액과 은행계좌 잔액 1원이 맞지 않았다.

금액이 만 단위 이상인 경우라면 체크카드 사용 건을 누락한 것일 테고

천이나 백 단위인 경우 체크할인이 적용된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금액 1원이라니.

그것도 모자라는 게 아니라 남는다.

누군가 선의로 줬다기에는 빈정 상하고

실수라기에는 미심쩍다.

저녁을 대충 먹고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엑셀에 카드사용내역을 일일이 적어가며

계좌와 대조하기를 되풀이하다가

잘 시간이 다 되었을 때 급기야 1원의 정체가 드러났다.

한참 전에 모 은행에 계좌를 만들 때 인증과정으로 입금됐던 것이었다.

가계부에 00은행 인증 이라고 쓰고 1원을 수입으로 잡으니

비로소 가계부와 계좌의 잔액이 딱 들어맞았다.

그 순간 머릿속이 박하사탕을 먹은 것처럼 화~ 해지면서

온 몸이 노곤해졌다.

세상에, 1원 때문에.


그랬다는 얘기를 K2에게 했더니 옆에 있던 짝꿍을 지그시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런 사람 우리 집에도 있잖아. 가계부 잔액 맞으면 세상에, 그렇게 좋아하더라고?”


우리 사위로 말할 것 같으면

대기업 재무팀에서 모르긴 몰라도 매일 수백 수천억을 관리하고 있을 터다.

그런 그가 나와 같은 가계부 어플을 쓰면서 잔액이 맞았을 때의 희열을 느낀다니.

내가 송사우하고 같은 과인 것 같아 어쩐지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다.

그나저나 해결이 됐을 때의 기분은 좋지만

정체불명의 금액을 찾느라 깨알 같은 숫자를 볼 때는

피가 쏠리고 눈알이 빠질 것 같다.

그런 일은 그냥

한 번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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