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렸을 때 엄마가 자주 했던 말 중 하나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살아라.’ 였다.
모르면 약인 것을 괜히 올려다보고 나서 자식들 기죽을걸 염려해서인지
위로 올라가려는 자식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였는지는 엄마만이 알 일이다.
어쩌면 엄마도 모를지도 모른다.
그냥 속담에 충실했을 뿐일 지도.
어머니의 말씀을 너무 깊이 새긴 나머지
사는 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부작용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부자 친구와 잘 지내지 못했다.
3학년 때 짝꿍 S는 아침마다 가방에서 온갖 간식을 꺼내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
비스킷 초콜릿 사탕 크래커 등
그것도 더러는 국산이 아닌 외제도 섞여 있었다.
가방에 책은 없고 간식만 들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고는 무슨 기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반 친구 중 몇 명을 콕 찍어 간식을 나눠주었다.
간식을 받는 친구는 대부분 S와 어울려 다니는 아이들이었는데
무슨 일인지 어느 날엔가는 그 애들이 아닌 전혀 다른 아이를 지목하기도 했다.
S는 나보다 키가 작았지만 내게는 쳐다보지도 말아야 할
(올려다보지 말아야할 나무 중 엄마가 가장 우려하는, 무려 부잣집)
아이의 대표격이었다.
하여 나는 짝이 간식 공세를 펼치는 동안에는 자리를 피해 멀찍이 앉아있었다.
S의 엄마가 가끔 학교에 올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선생님은 체육시간도 아닌데 아이들을 운동장에 나가서 놀라고 했다.
선생님이 그러라고 하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그 친구가 부럽지는 않았는데 왠지 기분은 좋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새 학기에 자리를 바꿨는데
내가 전교 1등을 하는 G와 짝이 되었다.
G는 내게 오르지 못할 나무로 여겨졌다.
집에 와서 얘기했더니 오빠는
“그 친구 하는 대로만 따라하면 되겠네.”
라고 했다.
그 무슨 당치 않은 소리를
울엄마가 오르지도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랬는데.
나는 짝을 짝이라 부르지도 못했고 눈길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얼핏 곁눈질에 들어오는 그 애 모습은 여느 아이들과 특별히 다르지도 않았다.
3교시가 끝나면 몰래 도시락을 까먹었고 점심시간에는 책상에 엎드려 잤다.
키가 커서 체육복 바지 아래 발목이 나온 것을
바지를 끌어내린다고 가려질리 만무할 텐데도 G는 연신 고무단을 끌어내렸다.
얼굴은 예쁜데 약간의 허당기까지 있었다.
전교 1등에 걸맞게 G는 마지막 기말고사에서도 1등을 했지만
우리는 짝이면서도 서로 사는 곳도 몰랐다.
그 친구와 변변한 대화 한 번 나눠보지 못한 채
우리는 각각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오빠의 말처럼 내가 G와 친하게 지내면서 그 친구가 하는 대로 따라 했다면
나도 전교 1등을 해볼 수 있었을까?
하지만 나는 전교 1등이 부럽지가 않았다.
지금 와 생각하니 그 때 그 친구를 부러워해 볼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모임으로 만나는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 두 명이 전부이지만
지역 센터에서 강의를 듣거나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대부분 한 달 안에 모임이 만들어지고는 한다.
시작은 보통 ‘오늘 점심 같이 하죠’ 로 시작하는데
몇 번인가는 일을 핑계로 빠져보기도 했지만
결국 밥 모임에 가지 않으면 강좌를 듣기도 불편한 상황이 되고야 만다.
다 큰 어른이 여전히 엄마의 말씀을 수행하느라 그랬을 리는 없지만
올라가도 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보다
차라리 사람들 모이는 곳을 피하다보니 그 것이 이미 익숙해져 버린 탓이었다.
사람들이 모여 앉으면
아들이 로스쿨에 갔고, 딸이 대기업에 다니고
사 놓았던 아파트가 재건축이 돼서 스무 배로 뛰었고
사위가 어버이날에 안마의자를 사줬고
만날 뒤꽁무니만 쫄쫄 따라다녀서 지겹다는 남편이
생일 선물로 차를 바꿔 줬다는 등의 말들이 경쟁하듯 이어진다.
처음에는 정말 놀랐다.
세상에 로스쿨이며,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기업 L사 S사에다
스무 배로 뛴 아파트, 얼핏 들은 얘기로 천 단위쯤 한다는 안마의자를, 그것도 사위가?
대한민국 인구가 얼마인데 그런 사람들이 내 주변에 모여 있다니.
그런데, 그래서 뭐.
놀랍기는 한데 부럽지는 않았다.
나한테는 부러워하지 말라고 했으면서 엄마는 딸 가진 다른 엄마들을 부러워했다.
그냥 마음으로만 그런 게 아니라 대 놓고 부럽다고 말했다.
뉘집 딸들은 번갈아가며 엄마를 해외여행 시켜 준다더라, 아무개 딸은 엄마가구를 싹 바꿔 줬다더라, 친구 딸은 엄마 온천관광 시켜 줬다더라...다더라 다던데 등등
그 말끝에 항상 따라 붙는 얘기도 빼놓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딸은...”
그 다음 말은 안 들어도 뻔하다.
엄마도 참,
자꾸 올려다 보기만 하면 어쩐대요
아래를 내려다보고 살아야지, 라고 말했어야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