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늘은 19화

그래도 하나는 건졌으니 다행이네

오늘은

by 이연숙



어렸을 때는 콩국수를 좋아하지 않았다.

첫 맛은 고소한데 먹다보면 느끼해서 세 젓가락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콩국수는 그런 맛이라고 알아버렸기 때문에

여름이라고 굳이 콩국수를 찾아 먹은 적은 없다.

면 좋아한다고 김종면이 된 가수 못지않게

K 역시 국수킴이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을 만큼 국수를 좋아한다.

콩국수 잔치국수 칼국수 비빔국수 냉면 등 조리방법을 가리지 않고

면이라면 최소 사리 추가가 기본이다.

그 중에도 냉면은 국수가닥을 자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나 뭐라나.

언젠가 식당에서 종업원이 물어보지도 않고 가위로 면을 자르려고 하자

급한 나머지 K가 화를 냈다.

아니, 종업원에게는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을 것 같다.

눈이 크고 약간 돌출된 모양이라 진지한 얘기를 하거나

뭔가를 강하게 주장할 때는 눈이 쏟아질 것 같다며

손을 가져다 대고 받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집에 누가 왔을 때 K가 국수를 삶는 것을 보고

식구들은 그러려니 하지만 처음 본 사람들은 그 양에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농협 하나로에서 판매하는 콩국물이 좋다고 했다.

K가 시장에서 파는 메밀국수에 그 콩국물로 콩국수를 만들어주면

그건 맛이 좋았다.

어렸을 때 먹었던 그 맛이 아니었다.

그 때는 더욱 뽀얗게 하고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해

커피 프리마를 넣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콩국수를 먹으면서 느끼해서 먹을 수 없었다는 게

그 말을 뒷받침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이사를 온 후 아쉬운 점 중에 K에게는 콩국수도 있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걸어서 가기는 어렵지 않지만 물건을 들고 걸어오기엔 다소 애매한 시장이 있다.

장 구경을 좋아해서

이 곳에 이사 오고 얼마 후 그 시장을 돌아보다 두부를 만들고 있는 집을 발견했다.

두부만 사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청국장도 만들어 팔고 여름이면 콩국물도 만든다고 했다.

이 후로 K가 자전거를 타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두부를 사러 다녔다.

매번 살 때마다 버려지는 플라스틱 두부 팩이 아까워서

아예 두부전용 통을 사서 들려 보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청국장을 사고 여름이 되자 콩국물을 샀다.

아주 살짝 까끌한 느낌도 있고 고소하지만 담백한 맛에 나도 콩국수 마니아가 됐다.

지난겨울부터 마땅한 점심메뉴가 떠오르지 않으면 먹던 들기름막국수는 잠시 넣어두고

요즘은 K가 집에 있는 날에는 거의 콩국수를 먹는다.

두 메뉴 모두 메밀국수가 베이스이고

들기름도 콩도 건강한 음식인데다

무엇보다 속이 편하니 달리 흠을 찾기 어렵다.


지난봄까지만 해도 동네에 어떤 맛집이 있는지 몰랐다.

구도심 골목 안 쪽에 숯불로 굽는 닭갈비집이 있었다.

간장, 고추장, 허브 양념 세 가지 메뉴만 있는 것으로 보아

딱 골목식당 느낌이라며 그 곳이 K의 맛집 리스트에 올라갔다.

나는?

일단 양이 너무 적고 고기가 약간 말라있는 느낌이라 별로.

옆 단지 상가에 오며가며 전부터 봐 왔던 삼겹살집이 있는데

테이블면적의 80%가 특수 제작된 철판이고

삼겹살에 달려 나오는 부재료가 풍부해서 K는 합격

역시나 고기 양이 적어서 나는 그닥.

우거지 대신 콩비지가 베이스인 감자탕집

K는 벌써부터 아이들 데리고 올 생각을 하는데

나는 뭐 딱히

그래도 그 사이 자주 가는 순댓국집도 생겼고

막창, 돼지곱창, 소곱창집도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아직 나는 인생 맛집이라 할 만한 곳은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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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주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는 와중에

나는 친구와 제주에 가기로 했다.

공항 가기 전 점심으로 또 콩국수를 먹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고 편안하다.

아직까지는 그 집이 내게는 맛집이다.

1년 사는 동안 그래도 하나는 건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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