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떼기 마음도 모르면서

오늘은

by 이연숙



뛰어나게 잘하는 건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다.

그런데 이제 그런 말 함부로 할 수 없게 됐다.

지난 봄, 각각 다른 곳에서 로즈마리 두 개와 프렌치 라벤더 하나

그리고 당근에서 샀던 다른 종류 라벤더를 들였는데 생각보다 잘 자랐다.

애초에 똥손이 어디있겠냐며

정성을 들이다보면 나도 식물박사 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화분 몇 개 정도는 집에 둘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하여 내년 봄쯤에는 부쩍 자라 무성해진 화분으로

집안 한 귀퉁이를 초록으로 장식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차 있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허브종류는 물과 바람과 햇볕 삼종 세트 중에서도 바람이 매우 중요하다기에

매일 아침이면 내 가슴까지 오는 베란다 난간을 넘겨 에어컨 실외기 위로 내 놓았다가

저녁이면 거둬들이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나중에는 조금 진화해서 앵글로 틀을 짜고 집에 있던 판을 고정해

난간 가로대 위에 걸쳐 놓아, 올리고 내리는 일이 조금 수월해졌다.

물은 규칙적으로 주는 게 아니라 흙이 마르면 주는 거라고 해서

마사토 사이로 손가락을 깊숙이 넣어 흙 상태도 매일 확인했다.

확장형집이라 식물을 기르기에 적합지 않은 환경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일을 되풀이 하다 보니 생각보다 꽤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그 키우기 어렵다는 로즈마리가 숱이 빽빽해져 진한 향기를 풍기는 날도 머지않았다 싶었다.


한 달 먼저 들여왔던 광명산 1번 로즈마리의 잎이 시멘트가루를 뒤집어 쓴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이 두 달 쯤 전이다.

식물 잘 키우는 K2가 왔을 때 그렇다고 했더니

걔네들은 잎을 만졌을 때 진이 나오기도 하니 그래서 그런 거 아닐까? 했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넘겼다.

그 후 몇 개 안 되는 허브 화분에 대 재앙이 들이닥친 건 불과 일주일 남짓 전이다.

캠핑을 다녀온 후 물을 주는데 1번 로즈마리가 유난히 잎이 말라보였고

흔들어보니 우수수 떨어졌다.

내친김에 줄기 정리를 하면서 새잎 위로 마르고 구부러진 잎을 잘라냈다.

잘라낸 잎은 망에 넣어 침대 머리맡에 걸어두고는 했다.

하여 바닥에 떨어진 잎을 손으로 주워 모아 망에 넣으려는 순간

잎 하나가 얼핏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안경은 쓰고 있었지만 요즘 따라 난시가 심해진 것 같아 안경을 바꿔야하나 하던 참이었다.

다시 잎을 주워 담으려는데 이번에는 잎처럼 생긴 길쭉한 것이 화분 끝에 매달려 다시 꿈틀한다.

순간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고 동작이 일시정지 됐다.

안경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움직이는 벌레였다.

그 것은 신기하게도 로즈마리 잎처럼 녹색에 길쭉하게 생겼다.

자세히 보니 무늬도 있었고 털도 있었나?

비닐 봉투를 가져다가 망에 넣었던 잎을 탈탈 털었다.

여전히 베란다 바닥에 흩뿌려 있는 잎들을 어쩌지 못하고 그냥 방으로 난 문을 닫아버렸다.

송충이라고 했다.

왜 진즉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 그게 어디서 왔는지를 아는 것은 의미가 없는 줄은 알지만

생각할수록 허무하고 억울한 마음까지 든다.

내가 언제 이렇게까지 식물에 진심이었던 적이 있었나.

한낱 풀떼기라고 만만하게 본 적 없었다.

그리고 보니 당근에서 샀던 한껏 잘 자라던 라벤더 밑동도 검게 타들어가는 것 같았고

파주출신 2호 로즈마리도 숱이 성글어진 느낌이었다.

양재에서 유럽 들판에 널린, 바로 그거라던 프렌치라벤더를 헤쳐 보니

안 쪽은 이미 손 쓸 수 없을 만큼 까맣게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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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케가 내게 물은 적이 있었다.

언니는 대체 안 어려운 사람이 있기는 하냐고.

시어머니는 당연히 어렵고 친정엄마는 더 어렵고

농담이랍시고 입바른 소리를 콕콕 해대는 동생도 어렵고

알은체 해주면 반갑지만 먼저 말 건네기는 어려운 아들도

이제 영원한 사위편이 된 딸도 점점 조심스러워진다고 했더니

혀를 끌끌 차며 했던 말이다.

어디 그 뿐이랴

올케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사람들이 그냥 다 어렵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어렵고

이유를 모르는데 연락이 뜸해진 친구에게 말 걸기가 어렵고

밤이면 이 방 저 방 옮겨 다니며 자는 단추 마음을 읽어내기가 어렵고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도 결국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 화분들이 또 어렵다.

하긴 풀떼기 마음도 모르는데 사람 마음을 어떻게 알겠나.


봄부터 초여름까지 내게 작은 희망이 되었던 베란다화단이 한 순간에 초토화되었다.

정성을 들인 기간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라벤다 화분은 버렸고 미련이 남아있는 로즈마리는 아직 남겨 두었지만

결국 버리게 될 거라는 걸 안다.

식물 잘 아는 K의 친구는, 식물은 죽이면서 배우는 거라고 했단다.

내년 봄에 내 마음이 또 어디로 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배우기 위해 보내는 일을 되풀이 하고 싶지는 않다.

풀떼기도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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