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옷이든 가방이든 가구든 심지어 그릇이든
물건을 산 후 물건에 붙어있는 상표를 바로 떼지 않는다.
혹시 바꾸게 될지도 몰라서인지, 새 것의 느낌을 좀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인지
어쩌면 둘 다인지 모르지만 이제는 가족 모두가 그러려니 한다.
그런가 하면 K는 물건을 사면 그 즉시 태그부터 제거한다.
작년 여름 차가 출고 됐을 때
K는 주차장에서 반나절이 지나도록 올라오지 않았다.
차량에 붙은 온갖 보호테이프며 상표 비닐을 제거하느라 그랬다.
바지를 사면 그 즉시 택을 떼고 길이 수선을 맡긴다.
신발을 사면 박스를 비롯한 모양지지대 같은 부속품들을 매장에서 버리고 온다.
같이 옷을 산 날에는 집에 오자마자 자기 옷의 태그를 몽땅 뗀 다음
내 것까지 떼자고 가위를 들이민다.
“아 쫌 냅두라고요, 택 떼면 교환 환불이 안 된다잖아.”
“물건을 뭐 바꿀 생각으로 사나?”
그러면서 기어이 내 옷에 붙은 상표까지 뗀 후 잘려나간 것들을 모아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서야 흡족해한다.
엄마의 태그 보호본능(?)을 이해 못하기는 K2도 마찬가지라
언젠가 그릇 아래 붙어있던 스티커를 떼지 않고 쓰느라 글자가 다 지워진 것을 보고
“봐라 봐라, 이게 대체 언제 적 태그야? 이거 이제 안 바꿔줘.”
라며 늘어붙은 스티커를 물에 불려 수세미로 굳이 박박 닦아 냈다.
10년 전, 미국에 갔을 때 K가 말했다.
“이여사 좋으시겠어. 여기는 반품이 쉽대. 코**에서는 포장 뜯은 강아지 사료도 환불해준대.”
“아 내가 또 뭐 무슨 반품을 그렇게 한다고.”
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내심 마음이 느긋해지는 기분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애초에 반품할 의도로 물건을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냥, 매장에서는 잘 맞는 것 같아서 샀는데 집에 와서 신어보니 불편하다든가
살 때는 못 봤는데 불필요한 장식이 붙어있다든가
직원이 적극 추천을 해서 계산은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취향은 아니라든가
뭐 나름 다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20대 때 종각지하상가에서 샀던 원피스를 환불하러 갔다가
호된 봉변을 당한 이후로는 물건을 살 때
‘이거 바꾸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트라우마가 생긴 건 사실이다.
반품의 성지에서도 반품을 거절당한 적은 있었다.
아웃렛에서 가방을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 가죽의 느낌이 너무 헌 것 같았다.
세르비아 친구의 말로는 그게 빈티지라 그런가보다고 했다.
그런 증거로 금빛코팅이 된 가방 로고는 비닐 코팅이 붙어있고
지퍼 또한 한 가운데 양 방향으로 고정되어있지 않느냐고 했다.
하지만 한 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배하니
가방 사이즈가 너무 큰 것도 마음에 안 들고
또 그 곳에서 샀던 다른 가방과 디자인도 비슷한 것 같아서 결국 환불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몇 번인가 구두와 원피스 등 반품을 했던 때와는 달리
그 날 담당 직원은 처음부터 단호했다.
이유는, ‘네가 이 가방을 사용했다는 걸 안다. 가방 포켓에 핀이 들어있었다.’ 였다.
‘그래 한 번 사용했다, 그런데 가방이 생각보다 크고 빈티지 디자인도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라고 말했지만 그녀의 대답은 깔끔하게
“놉.”
이었다.
결국 반품에 실패한 그 가방은 짐에 실려 한국까지 왔고
당근마켓에조차 내 놓지 못하고 장롱 어느 구석에 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에는 평범하지 않은 디자인이 그리 썩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의자가 있다.
의자라면 모름지기 책상이든 식탁이든 밑으로 밀어 넣을 수 있어야 청소하기도 쉽고
정리가 되는 느낌인데 그 의자는 원목으로 팔걸이가 등받이에서 둥글게 이어져
탁자 밑으로 들어가지 않을 뿐더러 애매하게 걸치는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K2네 집에 가면 그 의자를 피해 다른 의자에만 앉았었다.
이사를 하면서 책상의자가 필요했는데 아이가 그 것을 추천했다.
적극적으로 싫다고 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그냥 대답을 회피했었다.
일단 앉아보라고, 엄청 탄탄하고 편하다고 했다.
못이기는 체 한 번 앉아보았는데 그 느낌이 꽤 좋았다.
가구를 자주 살 일도 없지만 특히 의자는 종류도 많고 디자인, 가격차이도 너무 많이 나서
선택 장애 때문에 고민에 빠질게 뻔해서 그냥 아이 말을 들었다.
그러기를 잘했다는 말은 나보다 좀처럼 리뷰에 인색한 K가 먼저 했다.
그 무렵 목공을 배우러 다니던 그가 보기에도
이렇듯 탄탄한 의자를 그것도 유려한 곡선으로 마감한다는 것은 상당히 잘 만든 의자라는 것이다.
소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뭐든 한 곳에서 몰아 구매하는 속성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의자가 마음에 드니 그 다음에는 소파와 1인용 안락의자를 또 그 곳에서 구매했다.
처음에 샀던 의자를 식탁용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책상의자가 하나 더 필요했을 때
망설임없이 그 브랜드몰에서 구입했다.
그게 벌써 일 년 전 일이었다.
여름내 컴퓨터 들고 나가 에어컨이 있는 거실 테이블에서 지내다가
날이 서늘해지면서 다시 방에 있는 책상에 앉았다.
의자를 당기는데 손에 뭔가 걸려서 보니 제품태그였다.
‘세상에, 이걸 아직 안 뗐네?’
의자도 책상도 이 집도 작년부터 있었기는 마찬가지인데
의식 하지 못했던 태그를 보자 어쩐지 잠깐 시간이 되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 오늘과 다르지 않을 내일
요일을 까먹고
어디선가 들은 말이 오늘 아침이었는지 어제였는지 헷갈리는 게 오히려 익숙한 요즘
재작년에는 없었던 의자가 작년에 우리 집으로 왔다는 사실에 문득 잠에서 깬 기분이었다.
이왕이면 태그에 메시지라도 적어 놓을 걸 그랬다. 타임캡슐처럼.
태그를 떼지 못하는 이유가 또 하나 생긴 것 같다.
교환 환불하기 위해서, 와
새 물건의 느낌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였다면
거기에 그 시간의 느낌을 기억하고 싶어서, 추가.
단, K가 가위만 들고 덤비지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