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용하던 사각 어항에 금이 가서
임시방편으로 도자기 수반으로 옮긴 것이 그대로 구피집이 된 지 벌써 일 년 쯤 됐다.
오래 전에 지인 따라 도자기 공방에 갔다가
아무거나 만들어보라는 선생님 말에 직경이 무려 40센티쯤 되는
(사실상 용도가 뭔지는 나도 잘 모르는) 볼이라고 해야 할지 수반이라고 할지
정체 모를 도자기를 만들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선생님은 꽤 유명한 도자기 작가였고
일일 체험도 유료이고 흙도 쓰는 양만큼 돈을 내야 하는 거였다고 한다.
코일링을 한다고 욕심 사납게 흙 한 봉지를 거의 다 쓴 것 같았다.
그걸 지인이 지불했는지 아니면 지인이 선생님의 애제자라서 그냥 무료로 해 준건지
그도 아니면 얼토당토않지만 내 재능에 감동한 선생님이
“돈은 받지 마라.”
고 한 건지에 대해 구태여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뭐 아무튼 보통은 용도를 생각하고 성형을 해도 정작 가마에 들어갔다 나오면 쪼꼬미가 돼서
머그컵은 커피 잔으로, 냉면 볼은 국 대접으로 국 대접을 생각하고 만든 것은 밥공기크기가 돼서 나오고
밥공기로 빚었던 것은 간장종지로 나오기 일쑤라고 했다.
그렇다는데 대체 나는 뭘 생각하고 만들었던 건지 이게 세숫대야로는 무거워서 쓸 수가 없고
냉면 그릇이라기에는 터무니없이 커서 도무지 용도가 없어 이리저리 채이던 중이었다.
그렇다고 생애 첫 작품을 함부로 버릴 수도 없었다.
(사실 도자기류는 버리는 과정도 별도의 자루를 구입해 깨서 버려야 한다던가? 뭐 암튼 간단하지 않았다. )
투명 사각 어항에 있을 때는 거실 책 선반에 놓아 오며 가며 눈에도 잘 띄었는데
납작하고 둥근 어항으로 옮기고는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 옷 방 서랍장 위에 두었다.
먹이도 그 방을 자주 사용하는 K에게 일임하고 나니
1~2주에 한 번 물을 갈아주는 것 말고는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어제 오후 낮잠을 자고 나온 K가 말했다.
“물고기 밥을 줬는지 안 줬는지 모르겠네?”
빨래를 접으면서 대수롭지 않은 듯 내가 대꾸를 하는데 K가 동시에 말을 하느라 목소리가 겹쳤다.
“하루쯤 굶는다고 죽기야 하겠어?”
“하루쯤 두 끼 먹는다고 죽진 않겠지?”
말해놓고 눈이 마주치자 내가 소리 내서 웃었다.
누가 들었으면 내가 무척 매정한 사람이라고 할 것 같아 민망해서 웃었고
끼니에 진심인 성품이 사람뿐 아니라 작은 생명체에게까지 일관성 있는 K가 감탄스러워서 웃었다.
“그러게, 그걸 어떻게 알겠어. 구피 말을 들어볼 수도 없고.”
접은 옷을 넣으려고 서랍장 앞에 섰을 때 왠지 구피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 새 또 새끼를 낳았는지 꼬물거리면서도 빠르게 헤엄치는 작은 점들이 보였다.
도자기가 거의 검정에 가까운 갈색이다 보니 안에 몇 마리가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물을 갈아줄 때마다 체로 떠 옮기면서 세 보지만
워낙 날쌔게 이리저리 튀는 놈들을 잡아 넣다보면 세던 숫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언젠가 K에게 단추를 키우는 게 어떤 의미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객관식이거나 똑 떨어지는 답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대답이 오래 걸리거나
머뭇거리다가 생략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때는 달랐다.
내가 물으면서도 너무 막연한 질문 아닐까 했는데 의외로 K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책임감이지.”
공부도 가족도 회사도 책임감을 뺀 K를 상상해 본적은 없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조차 책임감이라고 말 할 줄은 몰랐다.
될수록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나와는 달리
K는 책임감을 가지는 것에서 의미를 느끼는 것 같다.
그나저나 구피는 괜찮을 것 같다.
캠핑을 가느라 꼬박 하루를 굶은 적도 있고
아침에 내가 먹이를 주었는데 그 방에서 자고 나온 사위가 또 줬어도
배가 터지거나 배탈이 난 아이는 없었던 것 같다.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면서도 또 화분을 들이는 나나
책임감 때문에 키우는 거라면서도 자꾸 단추를 침대 위로 무릎 위로 올려놓으려고 하는 K나
어쩌면 우리는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쯤이면 뭘 원하고 뭘 원하지 않는지 명확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