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전에 살던 동네는 집 주변에 녹지가 많았다.
봄이 되면 마치 무대 연출이라도 하듯
꽃이 간격 맞춰 계속 바뀌어 피었다 지고는 했다.
오래된 동네에 사는 장점 중 이 부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재작년 여름, 장미가 지고 나면 딱히 이렇다하게 기억나는 꽃은 없었는데
단지 밖을 에둘러 따라가는 넓은 잔디 공간에 드문드문 보라색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봤다.
처음에는 그냥 야생 잡풀인가 했었다.
여름이 깊어지면서 그 보라색 꽃이 더 자주 눈에 띄었다.
그것도 무더기로 피어있는 곳에는 꽤나 운치가 있었다.
어느 날엔가 단추와 산책을 하다가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쏟아지는 보라색 꽃무리를 보면서
프랑스 여행 중에 봤던 라벤더 밭이 떠올랐다.
처음 라벤더에 마음이 끌린 것이 언제였을까.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끝도 없이 펼쳐지던 보라색 라벤더무리를 봤을 때였는지
크로아티아 국경을 넘어가면서 거쳤던 네움의 작은 상점에서 라벤더 오일을 산 후였는지
여행이 끝난 후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베갯잇에 한 방울 떨어뜨린 라벤더 향 덕분에
깊은 잠을 자고 나서인지.
어쨌든 유럽 들판의 햇살과 기후가 달라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들판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간혹 여행 중 라벤더농원에 간 적은 있지만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갈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하긴 라벤더 노래를 하면서도 정작 그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본 적은 없다.
메로나 아이스크림으로 처음 멜론을 알았듯
라벤더향 샴푸로 라벤더를 알았으니 보라색 자잘한 꽃이라는 것 말고는 정확한 생김새도 모르면서 이런다.
문득, 생소한 보라색 꽃을 보면서
‘정말 저게 다 라벤더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했다.
그 보라색 꽃무리를 다시 만난 것은 올 해 여름이었다.
새 동네에 대한 낯섦과 코로나 상황 등 이유로 두문불출했던 작년과는 달리
올 해는 가끔 외출도 하고 단추와 산책도 한다.
마치 고향에 있던 꽃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여전히 꽃 이름은 몰랐고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밖에 나갔다 들어온 K가 물었다.
“여기저기에 보라색 꽃들이 피었던데 그게 무슨 꽃이야?”
“그러게, 나도 봤는데 꽃 이름은 모르네?”
이전에도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다가 종종 꽃 이름을 물은 적이 있었다.
스스로 식알못이라고 포기한 것에 비해
의외로 내가 아는 꽃 이름이 제법 많은 것에 나도 놀라기는 했다.
그렇다고 산책하다말고 검색 창 열어 식물 이름을 알아낼 정도로 의욕적이지는 않다.
내가 하지 않아도 궁금한걸 못 참는 K가 알아낼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단추 산책 후 돌아온 K가 말했다.
“그거 알았어. 맥문동이래.”
“아하 그래? 근데 어째 한약재 이름 같기도 하고?”
“약재로도 쓴다네?”
전에 살던 동네에 있던 것이 제멋대로 자란 야생화 느낌이었다면
이 동네의 것은 잘 설계된 조경에 의해 나무 사이사이에 적당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라벤더와 맥문동, 다른 건 이름 뿐은 아닌 것 같다.
라벤더가 햇살 화사한 들판에서 자란다면 맥문동은 그늘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결국 향으로 먼저 익숙해진 라벤더를 만나지는 못할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맥문동이 라벤더가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라벤더는 라벤더고 맥문동은 맥문동이다.
모시 송편이 쑥 송편은 아닌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