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립고 때로 서러운 이름, 가족
“동네 아줌마들 넷이 산에 갔다가 내려오는데 가구점이 갑자기 오줌이 마렵다는 거야.”
“아이고 저런.”
“그래서 어째, 그냥 풀숲에 누라고 했지. 그러다가 뱀을 봤나봐.”
“윽! 그래서요?”
“오줌 누다 말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을 치는데, 아 글쎄 뱀이 지그재그로 따라가더라?”
아줌마들 노상방뇨 사건, 은 아홉 번 쯤 들은 것 같다.
“내가 일해서 모은 돈으로 큰애 비싼 반코트를 사줬잖니, 그 때는 그런 거 입은 애 없었다?”
살림이면 살림 패션이면 패션, 어머니는 뭐 하나 누추한 꼴을 못 보셨다.
하여 없는 살림에도 자식들 옷차림은 늘 말끔했다, 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애가 학교 갔다가 코트를 안 입고 왔어.”
어린 시숙은 학교에서 친구에게 뺏겼다는 말을 하지 못했고
며칠 후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뺏은 아이 집으로 찾아 가서 한바탕 따졌다는
일명 반코트 사건은 서른한 번 쯤 들은 것 같다.
그 얘기 다음에 작은 며느리인 나를 의식하듯 부록처럼 따라 오는 얘기 또 하나
“어느 날엔가 정작 K는 아무 소리도 안하는데 반 애들이 ‘K오늘 선생님한테 맞았어요!’”
하더란다.
역시나 냅다 학교로 좇아간 시어머니가 선생님한테 따졌다고 한다.
우리 애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그랬더니, 사고 친 놈들 자수하면 혼 안 낼 테니 나오라고 했더니 정작 사고 친 놈들은 안 나오고 K가 나오더라며 그러니 그냥 들여보낼 수도 없고 난처해서 몇 대 때렸다더라?”
일명 어린 K의 오지랖 사건 역시 서른한 번 쯤
아버님 생신 날
집에서 음식 몇 가지 준비해 시댁에 가서 점심상을 차렸다.
식사 후 아버님은 소파에 길게 누워 눈감고 TV를 보시고
K는 운전 피로를 풀려는 듯 거실 바닥에 누워 이리저리 뒹굴거리고 있었다.
의도했던 건 아닌데 조카와 어머니, 여자 셋이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얘기가 빌미가 돼서 어머니의 전쟁 겪은 이야기로 흘러갔다.
“요즘은 그래도 물자나 많지, 피난 가는 사람들 옷도 많고 먹을 것도 보급 되고 스마트폰도 있더라. 육이오 때는 먹을 것도 없고 겨울엔 얼어 죽은 사람도 많았어.”
어머니의 고향인 화천은 전쟁 중에 북한 땅이 됐다가 남한 땅이 되는 등 뺏고 뺏기기를 되풀이 하느라 피난 짐도 여러 번 꾸렸다고 했다.
그래서 인지 얘기는 들을 때마다 달랐다.
어머니 기억이 왜곡되는 건지 그만큼 여러 상황이 있었던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여 어머니의 피난시절 얘기는 들을 때마다 새롭다.
예전보다 발음은 조금 어눌해진 편이지만 어머니의 기억은 거의 흐트러지지 않아 다행이다.
내가 들었던 얘기거나 아리송한 부분은 되묻기도 했고
이제 성인이 된 조카도 제법 호기심이 가는 듯 질문도 하고 변죽도 맞췄다.
그래서인지 그 날은 전보다 오래, 옛날 얘기들을 하시며
웃기도 했고 몇 번인가 어머니와 눈을 마주친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 비하면 어머니의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진 것 같고 목소리도 다정한 느낌이다.
가끔 내가 말귀를 못 알아 들어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고 다시 말씀하셨다.
그런 분위기가 낯 설기도 하면서 어쩐지 기분이 좋다.
어머니가, 이제 조금은 나를 예뻐하시나, 혹시?
라는 생각을 하다가 혼자 민망해서 지난 번 가져갔던 작약 화분 사진을 보여드렸다.
집에 와서 생각하니 어머니에게 자주 들었던 얘기 중 하나가 빠졌다.
일명 전설의 설악산 타짜 사건인데
결혼도 하기 전에 시부모님과 시누이까지 다섯 명이 설악산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3박 4일 일정으로 갔는데 사흘 동안 비가 왔다.
방 안에 앉아 예비 시부모님과 고스톱을 쳤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의 상대가 되어 드렸던 민화투실력이 전부였던 나에게
시어머니는 거금 칠천팔백 원의 노름빚을 지셨다.
식구들이 모일 때 어머니는 가끔 그 얘기를 하셨다.
“얘 말도 마라, 쟤가 아주 꾼이야. 그 때 느이 아부지랑 나랑 빤쓰까지 탈탈 털리고도 다 못줬잖니.”
다음에 어머니 집에 가면 그 얘기를 해야겠다.
아니, 고스톱을 치자고 할까?
이제라도 며느리와 마주 앉아서 지난 얘기를 들려주시는 어머니가 고맙다.
오래오래 그 얘기들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