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웃 것은 그리운대로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 일은 순전히 작은 언니의 큰 그림에서 비롯된 것 같다.
열두 살 차이, 즉 토끼띠 동갑이었던 큰집 작은 언니에게 작은집 동생인 나는
언니의 애착인형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아기였을 때에는 일하는 엄마 대신 나를 늘 업고 다녔다고 했다.
어느 겨울날 나를 업고 할아버지가 있는 사랑방에 들어갔다가
화롯불의 참숯가스에 취해 애를 업은 채 고꾸라진 일도 있었다는 얘기를 할 때마다 언제나 처음 하는 얘기처럼 언니는 깔깔 웃어댔다.
어떻게 생각하면 유년시절 내가 받은 사랑의 대부분은 언니에게서 였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3, 4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언니가 내게 노래자랑에 나가보라고 했다.
그 무렵 나로 말할 것 같으면,
- 초등학교 입학식 날 교실에 들어갔을 때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는 시간이었다.
키 순서였는지 이름 순서였는지는 내 이름이 거의 끝 부분에 불렸을 때
나는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두근거려 대답 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선생님은 다시 이름을 불렀고
아이들이 하나 둘씩 두리번거리기 시작했고
선생님이 세 번 째 내 이름을 불렀을 때는 교실 뒤편에 모여 있던 엄마들까지 웅성거렸다.
내 심장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뛰었고 얼굴은 불에 데인 것처럼 뜨거워졌다.
그럴수록 목소리는 더 깊이 기어들어갔다.
그 때 교실 뒷문 쪽에서 눈을 부라리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고 있는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겨우 손을 들며
“네.”
라고 했는데 목소리가 뒤집히면서
“끼익” 소리가 났거나 “꺼이” 소리가 난 것도 같았다.-
대충 그런 어린이였는데 노래자랑이라니, 그것도 전국에 방송되는 TV프로그램에?
그렇다고 언니가 강제로 목줄을 끌고 갔다거나 안 하면 때린다거나 했던 건 아니다.
며칠 후 나는 같은 반 친구 H와 노래자랑 예심이 진행되는 방송국 방청석에 앉아있었다.
목금이 특기였던 H는 노래도 잘했다.
그런데 나는, 노래를 잘 하는지 검증된 적이 없었다.
산수보다는 국어를, 음악 보다는 미술을, 체육 보다는 바른생활 과목을 좋아했으니 노래를 즐겨 불렀을 리도 만무하다.
언니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한 가지 언니가 믿는 가느다란 동아줄이 있기는 했다.
큰집 큰언니의 남편, 형부는 K방송국 라디오국 어디에 근무한다고 했다.
라디오국에 다니는 형부가 사촌 꼬마 처제 노래자랑에 나가는데 어떤 힘을 써 줄 수 있는지는 그 때도 지금도 모른다. 정작 자기 아버지인 큰아버지와 서먹했던 언니는 나보고 큰아버지에게 노래자랑 나가게 원피스를 사달라고 애교를 부리라고까지 했다.
하여 하늘색 샤랄라한 원피스를 입고 예선에 나갔다.
결론은 내 순서가 됐을 때 덜덜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두 손을 모으고 노래를 시작함과 동시에 탈락이라는 피아노 건반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는 것.
친구는 본선까지 가서 정말로 TV에 나왔다.
텔레비전에 동생이 나오는 걸 보고 싶었던 언니의 꿈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그 때 생각을 하면 이불킥을 하면서도 한 편 드는 생각이
‘그 참, 한 소절 들어보기라도 하시지, 새 옷까지 입고 나갔는데 민망하게스리.’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언니가 오십 대 였던 어느 무렵에
언니는 실제로 본인 자신이 TV에 나왔다.
아침 방송에서 자기 사연 얘기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언니는 긴장한 게 분명한데도 예의 눈웃음을 지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나보다 언니가 훨씬 대인배였던 거다.
2년 전 봄, 언니는 세상을 떠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언니의 빈자리가 점점 허전하게 느껴진다.
생각해보니 언니와의 추억은 깊고 진하기는 한데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봄기운이 느껴질수록 어쩐지 파고드는 바람이 차가워 옷깃을 자꾸 여미게 된다.
언니가 보고싶은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