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헤어질 때

by 이연숙



10년 전, 처음 웰시코기를 키우기로 결정했을 때

무엇을 상상하더라도 그 이상일 털 빠짐과 우렁찬 목소리를 감당할 수 있을지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라고 했었다.

어쩌면 남들 다 있는 수준의 약간의 분리불안과 반가움 서운함 등의 표현일 지도 모를

고기의 행동들이 역시나 여러 가지 상황들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헤어질 때 인사 절차인데

우리가 대전에 갔을 때는 각자의 방식대로 인사를 하고 견주가 개를 간식으로 유인하는 동안

게스트는 바람처럼 잽싸게 출입문을 닫고 나와야 한다.

문 밖에서 승강기를 기다리는 동안 목소리를 내서도 안 된다.

혹여 빼놓고 온 거라도 있어 다시 들어가야 할 상황이 된다면

주차장까지 따라오는 웰시코기의 우렁찬 목소리를 감수해야 한다.

K2가 집에 왔다 갈 때에는 그나마 좀 낫긴 하지만

개님 흥분할 새라 서로에게 다정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질 상황이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당분간 서울에 임시 거처로 퇴근하는 K2를 보러 갔었다.

비어 있는 집에 간단한 침구와 세면도구, 차 한 잔 할 정도의 도구만 가져다 놓은 상황이라

저녁은 밖에서 먹고 집에 가서 차 한 잔 마시고는 바로 잠자리에 누웠다.

얼결에 만들어진 상황이지만 한 방에서 딸하고 둘이 누워 잠을 잔 적이 언제였나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산 밑이라서인지 주변이 무척 조용했다.

베개에 머리를 붙이면 바로 잠이 들던 아이가 어쩐 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혹여 피곤한데 내가 자꾸 말 시켜서 잠을 깨울까 우려했는데

점심에 커피를 마셔서 잠이 안 온다고 하니 그 커피가 고마울 지경이었다.


“사는 데 그리 많은 물건이 필요 없는 것 같아. 이 대로도 괜찮네.”

“맞아. 냉장고가 없는 건 좀 불편하지만 이렇게도 좋아.”


다음 날, 전 날 사가지고 왔던 김밥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버스 승강장에 줄을 섰다.

공기는 칼칼한데 아침부터 햇살은 눈이 부셨다.

마스크를 쓴 아이 얼굴을 힐끔힐끔 보고 있자니 자꾸 웃음이 났다.

아이는 회사로 가기 위해 버스를 갈아타고 나는 조금 더 가서 홍대 앞에 내리기로 했다.

아이가 내릴 정류장을 앞두고 신호대기에 차가 멈췄을 때 버스 뒷문 앞에 섰다.

내가 뒤를 돌아보자 아이가 손을 들어 보였다.

다시 돌아보니 아이가 또 빠이빠이 모양으로 손을 살짝 흔들었다.

버스가 멈추고 아이가 내렸다.

버스 차창 밖을 걸어가는 아이와 버스 안에 앉은 내 높이가 같아졌다.

아이가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멀어지는 아이 모습을 보느라 버스 안에서 몸이 돌아갔다.

문득, 나는 엄마와 헤어질 때 이렇듯 애틋했던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과 함께

오래전 한 버스 정류장의 풍경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오빠 집에 사는 엄마가 동생 집에 왔다고 했다.

별 일 없으면 와서 점심 먹자고 엄마가 전화를 했다.

그런 일은 전에도 없었고 이 후에도 없었다.

엄마는 익숙하게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상을 차렸고 둘이 앉아 소박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약속이 있어서 집을 나설 때 엄마가 굳이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을 했다.

버스에 올라타서 자리에 앉았다.

어스름히 해가 기울고 있었다.

눈으로 엄마의 모습을 좇았지만 북적거리는 승강장에서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고 생각하는데 사람들 틈 사이에서 엄마가 발돋움을 하며 나는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백오십 센티미터 정도의 키였는데도 그 날 엄마의 얼굴은 확실하게 보였다.

이제까지 살면서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유일하게 애틋한 표정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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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엄마와는 좋은 모습으로 헤어진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우리 집에 오셨을 때나 엄마 집에 갔을 때, 심지어 여행을 갔을 때조차 딱 하룻밤 까지 좋다.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점심 무렵쯤부터 뭔가가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 ‘뭔가’가 나는 아직도 어렵고 겁이 난다.

내 안에 있는 엄마의 자리는 여전히 물음표인데 엄마는 자꾸 늙어간다.

사람들 사이로 발돋움하던 엄마의 나를 보던 얼굴이 가끔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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