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베개는 다 어디로 갔을까

by 이연숙


“서울에는 평지가 거의 없어, 네가 사는 신도시하고는 달라.”


라며 친구는 까르르 웃었다.

정릉 주변 집을 보던 중이었는데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가파른 언덕이 끝도 없었다.

정릉에 사는 친구와 통화를 하던 중, 너희 집도 그러냐고 물었더니 친구가 했던 말이었다.

얼마 전 이사를 한 K2네 집도 예외는 아니다.

차로 언덕을 오르고 또 올라 아파트 단지 입구에 도착했는데

그 곳은 입주자 전용이라 방문자는 후문으로 가란다.

후문으로 가느라 가파른 내리막을 지나 다시 오르막.

겨울에 눈 오면 어떻게 다니느냐는 말에

서울에는 도로에도 열선이 깔려 있다나 뭐라나.


사실, 내가 결혼 전까지 살았던 친정집도 산동네에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3번지라고 하면 가파른 언덕 위라고,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악명 높은 동네였다.

버스에서 내려 약 35도 각도의 긴 언덕을 오르고 나서 왼쪽으로 꺾어지면

느낌 상 거의 50도 각도의 가파른 언덕을 등산하는 기분으로 올라가야 했다.

오른쪽 왼 쪽으로 꺾어진 경사진 골목길을 지나 집 대문 앞에 도착하면 숨이 턱밑까지 찼다.

골목 안 쪽에는 작은 슈퍼가 있었고 그 건너편에는 주택의 한 쪽을 개조한 곳이 있었다.

유리 새시문 안에는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 두 사람이 늘 바쁘게 재봉틀 질을 하고 있었다.

옷을 만드는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커튼이나 이불 등 완제품이 보이는 것도 없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그 집 앞에 늘 커다란 비닐봉지 안에 꼭꼭 채워진 자투리 솜이 나와 있었다는 것이다.

그대로 버려진다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깨끗한 상태라서

그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한두 번 눈길이 가고는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퇴근하고 집에 오니 그 큰 솜 뭉텅이 하나가 우리 집 마루에 턱하니 들어와 있었다.

이게 왜 여기 있냐고 엄마에게 물으니


“깨끗한데 버리는 게 아깝잖아. 그래서 가져가도 되냐고 하니까 얼른 가져가라더라.”


라고 했다.

엄마는 다음날부터 집안에 있는 천이란 천은 다 꺼내서 베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솜이 깨끗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나일론 솜을 틀어서 이불은 만들 수 없으니

간단하게 베개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아마도 솜뭉치를 한 덩어리쯤 더 가져온 모양으로

집 안에는 지퍼도 없는 멍텅구리 알록달록한 베개가 날마다 늘어났다.

여관 하려고 그러냐며, 그걸 다 어디다 쓰려고 그러냐고 물으니


“얘, 왜 쓸 데가 없니? 오빠 네도 오고 애들도 생기고 너도 시집갔다가 놀러오고 00이도 장가들고 그러면 식구가 몇이냐?”


라며 재봉틀의 실을 이로 야무지게 끊어냈다.

엄마의 자개장롱 이불 칸에는 바닥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베개가 차곡차곡 쌓였다.

얼핏 보기에도 스무 개는 넘지 않았을까 싶었다.

제품의 품질은?

나름 편안했다.

그리 높지도 낮지도, 너무 푹신하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것이 내게는 딱 알맞았다.

실제로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긴 후에도 친정에 가서 잠을 잘 때

베개 때문에 불편했던 적은 없었다.

3번지 집에서 동생 네 세 식구까지 모두 열두 식구가 함께 잠을 잔 적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동생이 결혼하고 1년 후 엄마는 살던 집을 전세 놓고 동생과 합가를 했다.

자개장 대신 아파트 방 크기에 맞는 아담한 장롱 안에 그 베개들이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그 많던 베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20230507그 많던 베개는 다 어디로 갔을까.jpg


K2가 새로 이사한 집은 평수가 작은 것에 비하면 실제 면적이 꽤나 큰 집이다.

인테리어를 하면서 집 안의 구석구석까지 미적 감성과 수납을 꼼꼼하게 계획했지만

유일하게 해결이 안 된 것이 싱글토퍼라고 했다.

중고거래를 하자니 집에 누가 오면 잠자리로 사용해야하고

그렇다고 두자니 어느 구석에도 티 안 나게 넣어둘 곳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였다.

그리하여 K2가 일하는 방, 수납장 옆 틈에 반은 끼우고 반은 벽에 기댄 상태로 있었다.

갈 때마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 토퍼를 보는 것이 옥의 티였는데 집주인이야 오죽하겠나 싶어

생각 끝에 집으로 가져올 테니 버리지 말고 두라고 했다.


“나 집에 오면 깔고 자라고?”

“서울로 왔는데 자고 갈 일이 있기는 하려나?”


말을 하는 동안 정말로 그렇겠네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서늘해졌다.

엄마는 자식들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베개를 만들었고

시어머니는 자식들과 모여 놀려고 방이 여섯 개를 들인 집을 지었다.

나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버려질 뻔했던 토퍼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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