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은 애매하고 또 특별하고

by 이연숙


봄이라기에는 늦고 여름이라기에는 조금 이른 느낌

장마 오이지를 담갔는데 그 오이지를 다 먹을 때까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을 때도 있었고

아직 김치를 담그지도 못했는데 일찍 시작한 장마 때문에 열무가 다 녹았던 때도 있었다.

더위가 일찍 닥친 요즘, 에어컨을 켜기도 애매하고 안 켜기에는 땀이 맺힌다.

참 애매한 6월이 벌써 막판으로 접어들고 있고 다시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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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아빠 뭐 먹고 싶으냐고 아이들이 물었다.

특별히 콕 찍어 아빠에게 물은 이유는

일요일, 즉 6월 25일은 K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한국전쟁이 시작 된 날에서 꼭 10년 후 그 날, 둘 째 아들을 낳은 셈이다.

하여, 내 이름은 잊어버릴 수 있을지 몰라도 K의 생일은 모른 체 하려해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6월이 되면 눈을 돌리는 곳마다 “잊지 말자! 6.25!” 가 도배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식구들의 생일이 7월에 몰려 있는 것도 별나긴 하지만

전쟁기념일이 생일인 것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K의 성향만큼이나 특별하기는 마찬가지다.


6월이 되면 생각나는 특별한 기억이 하나 더 있다.

나와 두 살 터울이 나는 남동생은 어려서부터 겁이 많았다고 한다.

외탁을 해서 쌍꺼풀이 진하고 커다란 눈 때문에 그렇게 보였던 이유도 되겠지만

친척들이 한마디씩 전하는 일화에 의하면 마음이 여리고 겁이 많았던 게 맞는 것 같기는 하다.


“안고 있다 내려놓으니 발을 땅에 안 대려고 고 짧은 다리로 내 몸을 감싸며 매달리지 뭐야?”


라고 했던 포천 아줌마 얘기

일 학년에 입학하고 3월 먼지바람이 많이 불던 날

언덕을 내려가 큰 길을 건너 다시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 등굣길이 무섭다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는 엄마가 했다.


“나 군대 갈 땐 엄마가 데려다 주는 거지?”


라고 했던 동생의 말은 전설이 되어 지금도 술자리에서 자주 안주거리가 되고는 한다.

우려와는 달리 동생은 혼자 학교도 잘 다녔고

군대는 (엄마가 데려다 줄 필요 없는) 출퇴근 하는 방위로 무사히 마쳤다.


그 동생이 초등학교 일 학년 때 학교에서 연필 한 다스를 받아왔다.

그 다음해에는 공책을 받아왔는데, 첫해에는 무심히 넘어갔었는데 자세히 보니

원호대상자에게 주는 선물? 위로품? 같은 것이었다.

오빠와 엄마와 나는 웃지도 못하고 멀뚱하니 서로 얼굴만 쳐다봤다.

아버지가 사고를 당했던 해에 동생은 네 살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오빠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여기저기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 인식은 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얼마나 슬프고 커다란 불행이었는지는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죽음을 알기에 너무 어렸던 동생에게 엄마는

아버지가 월남에서 싸우다 전사하셨다고 말했다고 했다.

뭔가 찜찜했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나 싶었는지 엄마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문제는 그 다음해였다.

이사를 하고 새 학교로 전학을 했는데 6월이 되니 원호대상자 증명을 떼 오라고 했다는 거다.

그제서야 엄마는 동생에게 사실을 말했고

6월이면 받아오던 학용품도 끊겼다.

동생과 내가 막 오십대에 접어들 무렵 술을 마시다가

동생은 아버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부분부분, 삽화같은 기억이지만 나는 세 살적 기억까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보낸 형제이니 당연히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 거라 믿었던 것은 엄청난 오해였다.

동생의 열 살은 어땠을까.

월남에서 전사한 줄 알았던 아버지의 사망원인이 달라진 것이 동생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아버지의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에 없는 동생의 삶은 어떤 색깔이었을까.

물어봤어야 했다.

더 많이 얘기하고 위로했어야 했다.


6월은 애매하지만 내게는 특별하다.

전쟁과 생일을 같이 떠올리게 되는 것도

잠깐 본의 아닌 원호대상자였던 동생도

생전에 아버지와 함께 했던 마지막 가족소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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