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의 결혼식에 왔던 엄마의 모습은, 동생이 카톡에 올렸던 아버지 산소에 갔을 때 사진속 모습보다도 조금 더 작아진 느낌이었다.
한 달에 한 번 단골 미용실에 다니면서 펌과 염색을 번갈아 하던 엄마가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지면서부터 염색을 하지 않았는데 못 본 사이 펌도 하지 않기로 했는지 하얀 생머리 할머니가 되어있었다. 립스틱은 가능한한 가장 화려한 꽃분홍색을 좋아했고 주로 동대문이나 평화시장에서 구입하는 옷은, ‘저런 옷은 누가 사나?’ 라는 의문을 가질만큼 온통 원색으로 알록달록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옷이나 화장품이 엄마에게는 기가막히게 잘 어울렸다.
외할머니가 자리를 보전하고 누우시기 전까지는 단정하게 쪽진 머리와 깔끔한 옷매무새를 유지하셨던 것과 다른 버전으로 엄마는 본인의 몸가짐을 관리했던 셈이다.
돌아가신 큰이모의 딸은, 길가다 사고가 나서 병원에 실려갔을 때 남들이 허름한 속옷을 보게되면 무시할 수도 있다며 예쁜 속옷을 사다줬다고 하고, 트레이닝복 차림이라 BMW 시승을 거부당했다는 기사로도 입성이 중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정작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여하튼 엄마는 그렇게 조금씩 노인의 모습을 갖춰가는 중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외삼촌이 보내주는 쌀의 우리 몫을 가지러 간다는 명분으로 엄마집에 갔다.
오빠에게 전화를 했더니 오빠 부부는 각각 일이 있어 외출중이고 집에는 엄마 혼자 계시다고 했다.
공동출입문은 이전에 알려주었던 패스워드를 누르고 들어갔다.
세대 출입문 앞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나예요.
어머나! 딸이야? 아유, 어떻게 전화를 했어어.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엄마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얼떨떨해서 할 말만 했다.
집 앞이에요. 문 좀 열어보세요.
뭐어? 여기? 우리집이라고? 아니 웬일이야아~
문이 열린 후에도 전화도 끊지 않은 채 엄마는 연신 돌고래 감탄사를 연발했다.
아이고~ 우리 사위왔어어!
처음 들어보는 장모님의 낯선 목소리가 어색하기는 K도 마찬가지인 모양으로 냅다 화장실로 들어간다.
K는 퇴직했나? K2는 결혼했던가? 요즘은 둘만 살겠네? 등 엄마의 요즘 무한반복 질문세례가 오늘은 조금 바뀌었다.
“뭘 좀 줘야하는데, 내가 커피 탈 줄을 몰라서. 사과는 있는데 사과 까줄까?”
나는 괜찮다고 했고 먹고 왔으니 안 먹어도 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되풀이 했다.
엄마는 겨우 자리에 앉았다가 금세 같은 말을 하며 일어섰다. 그 간격은 점점 좁아졌다.
안되겠다 싶어 내가 컵에 물을 따라 석잔을 들고와 앉았더니 잠시 멈췄다가 또 일어서며
“냉장고에 사과는 있는데, 사과 먹을래?”
“K서방이 당뇨가 있어서 사과도 많이 먹으면 안돼요.”
굳이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말은 효과가 있었다.
“으응, 당뇨가 심해? 그래, 조심해야지. 그럼 뭘 주나.”
“안 줘도 되고, 우리 노래나 할까? 요즘은 무슨 노래 잘 부르시나?”
다리를 다치기 전에 엄마는 수원에서 일산까지 세 시간 거리를 친목계에 가려고 혼자 다녔다.
백화점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고 노인들에게는 무제한 시간을 넣어주는 단골 노래방에 가는 것이 정해진 코스였다. 친구분들도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엄마는 노래부르기를 무척 좋아한다.
그 중에도 어렸을 때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엄마의 애창곡은 단연 ‘마포종점’이었다.
한동안 노인대학 노래교실에 다닐 때에는 세상에 내가 모르는 트로트가 그렇게나 많은 것을 알고는 놀랐는데 그래도 명불허전, 버튼만 누르면 어디서는 플레이 되는 엄마의 애창곡은 마포종점이다.
“에이, 노래는 무슨... 밤깊으은 마..포 종점~”
예의상 빼보는 말조차 끝나기도 전에 엄마의 플레이버튼은 자동재생이 됐다.
어느 사이 나도 따라 불렀다.
노래를 부르던 중 그동안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가사가 있던 것도 알게됐다.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없는 나도 서어어었드아~”
나는 비에 젖어 너도 젖고 갈곳없는 나도 젖다, 로 알고는 어째 좀 어색하다 했었는데 비로소 맞아 떨어지는 가사에 무릎을 쳤다.
그 부분 말고는 신기하게도 내가 마포종점 노래를 끝까지 다 부를 수 있었다는게 놀라웠다.
엄마의 목소리와 내 목소리를 합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봤지만 없었다.
엄마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집 앞 배드민턴장을 한 바퀴 도는 산책을 하다가 벤치에 앉아서 혼자 노래를 부른다고 말했을 때 가슴 한 가운데가 훅하고 막히는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와 목소리를 합쳐 마포종점을 부를 날이 얼마나 남아있을까.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눈물이 고여 떨어질 것 같아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