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수요일, 선거 날에
찜해둔 제라늄 꽃밭도 볼 겸
국수 좋아하시는 시아버님과 점심으로 콩국수도 먹을 겸
내친김에 소중한 투표권 행사 독려도 할 겸 시댁에 갔었다.
역시나 투표를 하러 갈 생각은 없었던 듯
여느 날이나 다름없는 일과를 보내고 계셨다.
메밀국수를 삶아 공수해간, 방금 내린 콩물에 말아 점심으로 먹고
K가 두 분 모시고 투표장에 갔다.
돌아 올 때는 어머니 먼저 집에 내려 드리고
K는 아버님 이발해드리러 다시 나갔다.
어쩌다보니 어머니와 스무 살 조카, 셋이 어색하게 앉아있게 됐다.
원래 말주변이 좋지도 않지만
특히나 시어머니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지.
어색하면 아무 말이 자꾸 나올까봐 TV리모컨만 만지작거리던 차에
다행히 그 날은 어머니가 말씀을 많이 하셨다.
“용인 어디 시골이었는데 풀숲을 헤치고 가야 했어.
아주 길이 나빴어.“
처음 시어머니, 그러니까 아버님의 어머니를 뵈러 가는 날이었다고 했다.
“나는 만두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팔뚝만한 만두를 자꾸 더 먹으라고 덜어주는 거야.”
어쩐지 낯설지 않은 얘기에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했다.
내가 첫 인사를 하러 갔을 때에도 만두를 끓여주셨다.
평안도가 고향인 시댁에서는 특별한 날이면 만두를 먹는다고 했다.
특별한 날 뿐 아니라 겨울에 신김치가 많아도 먹고
명절이나 손님을 치를 때, 혹은 그냥 먹고 싶을 때에도 만두를 먹었다.
만두 사이즈는 이 전에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국그릇에 만두 세 송이가 들어있는데 꽉 찼다.
다행히 어머니와는 달리 나는 만두를 좋아했지만
그릇이 비면 어느 새 다시 채워져 있기를 반복하느라
결국 나는 그 날 배탈이 나고야 말았다.
시댁 첫인사 자리에서 감히 거절을 하지 못하기는
어머니나 나나 마찬가지였던 거다.
“억지로 겨우 다 먹었는데 다음에는 또 순대를 주는 거야.”
“집에서 순대도 만드셨어요?”
“이북이니까 그랬나보지, 그런데 야 그게 어디 깨끗하기나 하겠냐? 난 비위가 상해서 못 먹겠는데 귀한 거라며 자꾸 덜어주잖아.”
그러고 보니 신혼초 저녁 무렵 어머니 집에 갔을 때
어머니가 부엌에서 뭔가를 콘크리트 바닥에 치대고 있었다.
가까이 보니 곱창이었다.
도축장 아는 사람에게 샀다는데
도대체 얼마나 산건지 부엌 바닥에서 치대지기를 기다리는 곱창이 산이었다.
나는 입덧 중이었고 곱창전골이 먹고 싶다는 말을 K에게 했던 것 같은데
지저분해서 한 번도 조리해보지 않았던 곱창을 다듬고 계셨던 거다.
그.런.데
그 날 우리 집에 왔던 곱창은 말 그대로 환골탈태를 하기에 이르렀다.
도축장에서 바로 나오느라 손질 과정을 거치지 않아서인지
곱창에 유난히 지저분한 불순물이 많이 붙어있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 것을 콘크리트 바닥에 치댄 후
소금을 넣어 빨래 빨 듯 바락바락 문지르고
가위로 기름을 일일이 깔끔(?)하게 자르고
급기야 뒤집기까지 이르렀다.
이게 다 똥이라며 안에 있던 곱을 말끔하게 긁어내자
곱창은 깨끗한 껍질만 남았고 산처럼 쌓였던 양이 큰 냄비 하나 만큼으로 줄었다.
그 날, 그 곱창은 참으로 오랫동안 씹었던 기억이 난다.
“집에 오면서 늬 아부지한테 그랬다는 얘기를 했더니 왜 싫다고 하지 그랬어? 그러더라?”
나도 궁금했다. 어머니는 그 시대에 눈에 띄었을 것 같은 미인이었다.
미인 일 뿐 아니라 자기 주관이 확실한 신여성이었을 것 같은 느낌이
젊은 시절 사진 속 어머니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어떻게 그래, 며느리가 첫인사를 갔는데. 그랬지.”
시어머니도 며느리 적에는
만두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도
비위가 상해 못 먹겠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는 말에
한 걸음 더 친근해지는 기분이 드는 건 무슨 일일까?
“내가 그렇게 깎아라깎아라 할 때는 말도 지긋지긋하게 안 듣더니 아들 말은 잘 듣네?”
이발하고 수염까지 깎아 말끔한 모습으로 아버님이 들어오시자
어머니의 잔소리 버튼이 다시 작동했다.
방금 전까지의 수줍고 배려심 깊은 어머니는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