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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Jul 20. 2023

자주 만났으니 친구가 되라고?

오늘은



도랑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돈 줍고

거기에 덧붙여 요즘

운동도 하고 포인트도 받는 재미에 푹 빠졌다.

처음에는 우리 집 중심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커피전문점, 햄버거가게, 아이스크림 가게

그리고 소공원 두 곳을 이어 걸으면 포인트를 채울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지점이 자꾸 바뀌어 이 곳 저 곳 경로를 찾다가

마침내 오래된 신도시 내, 작은 공원 네 곳과 커다란 아파트 네 개 단지쯤까지 아우르는 

큰 공원을 거치는 알맞은 경로를 찾아냈다.

거리도 5.5킬로미터 정도로 적당하고 30년 이상 된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걷는 내내 시원하고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횡단보도는 두 번 만 건너면 되고

무엇보다 길이 평평해서 좋다.

따로 하는 운동이 없으니 최소한 하루 그 정도라도 걷기로 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냥 매일 걸어야 했다면 방구석 귀신인 내가 그걸 했을 리 없다.

포인트 지점 다섯 곳과 걸음 수 만보를 채우면 무려 140 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

원래부터 공짜를 좋아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토* 앱을 이용하면서부터는 조종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말을 잘 듣는다.

걸으라면 걷고 누르라면 누르고 문지르라면 문지르고 출석하라면 매일 출석한다.

그런데 얼마 전 부터는 친구와 함께 토*을 켜면 10원을 준단다.

처음에는 K하고 마주 앉아서 “켜 봅시다.”하고는 사이좋게 10원씩 획득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포인트 지점에 가까이 가니 

‘근처에 토*을 켠 사람이 있어요.’

라는 메시지가 뜬다.

어떤 날은 한 사람, 또 다른 날에는 아무도 없을 때도 있더니

며칠 전에는 둘, 셋, 넷, 다섯, 줄줄이 가운데 글자가 0*0 으로 표시된 이름들이 수두룩 뜬다.

이게 웬일이냐며 모두 클릭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발걸음까지 경쾌해졌었다.

그렇게 받은 포인트가 8만 원이 넘으니 10만원을 넘겨보겠다는 은근한 투지가 생긴다.




며칠 전, 그 날은 K와 함께 나갔다.

첫 번 째 구름다리를 건너 공원에 가까워질 무렵 

몇 걸음 앞서가는 부부가 동시에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안 그래도 K2가, 최근에 포인트 받는다고 공원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서로 눈빛 한 번 주고 각자 흩어진다던데, 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함께 켜기를 눌러보았다.

아까 그 부부일 것 같은 사람 둘 외에도 두 사람이 더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한 사람을 눌렀더니 


“두 분이 꽤 자주 만나셨군요? 친구가 되어보세요.”


라는 팝업창이 대문 짝 만하게 뜬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까 봤던 부부는 벌써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고

그 시점에 휴대폰을 보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창은, 친구가 되거나, 친구가 아니라는 버튼을 눌러야 없어질 모양으로 나를 향해 빨리 누르라며 재촉하고 있었다.

친구가 되자니 서로 황당할 것 같고

친구가 아니라고 하자니 다음에는 그 사람을 만나도 포인트를 주지 않을 지도 몰라서

그냥 앱을 닫아버렸다.

어떤 알고리즘으로 나타나는 현상인지 나는 모르지만

비슷한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을 자주 마주쳤다는 말이겠다.

혹시 상대방은 나를 알아차렸을까?

이 후로 그런 상황은 점점 자주 일어났다.


정례아줌마, 초등학교 동창 재애아줌마, 관절 수술하고 병원에서 만난 아줌마 둘, 

전에 살던 동네 아줌마 등등 나를 포함한 자식들이 다 아는 엄마의 친구들은 그밖에도 많다.

검사를 해 본적은 없지만 엄마는 MBTI, E형임이 분명하다.

사람 관계가 제일 어려워 인적 네트워크가 빈곤한 나에 비하면 엄마는 핵인싸 할머니인 셈이다.

그나마 있던 친구들조차 소식이 점점 뜸해지고, 연락이 끊어지는 상황을 몇 번 겪고 나니

이러다 엄마처럼 나이 들었을 때,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게 됐을 때

온종일 방에 앉아 전화를 붙들고 수다를 떨 친구도 하나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스레 마음이 헛헛해진다.


정말, 자주 만나면 친구가 될 수 있는 걸까?

10년차를 코앞에 두고 코로나의 시작과 함께 해체된 소설팀은 한 달에 한 번 만났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각에 같은 사람들이 만나 소설을 읽고 합평을 하는 모임을 

무려 9년을 넘게 했었다. 


“우리, 가족보다 자주 만나는 것 같지 않아요?”


그 무렵, 아들은 말할 것도 없고 딸을 본지는 석 달쯤, 엄마를 보고 온지는 다섯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간에 신춘문예 등단을 한 멤버가 있기는 했지만 

이 모임, 발전도 없으면서 너무 오래 만나는 거 아니냐며 

농담처럼 딱 10년까지만 하고 각자 갈 길 가자고 말했었다.

농담이 빌미가 된 건지 코로나가 타이밍 좋게 핑계가 되어준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모임은 10년을 9개월 앞두고 그렇게 끝이 났다.



친구를 만들 줄도 지킬 줄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자주 만났다고 친구가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이다음에 더 나이 들었을 때, 친구는 노인정에서 만나기로 하고

(그 때라고 친구가 생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그냥 포인트나 받으러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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