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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Nov 28. 2023

킬로미터당 구 분 이십 초


집에서와 다른 점은 딱 한 가지, 언제나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한 시간 가량의 산책을 나간다.

샤워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아 뭐라도 쓰고 한 시쯤 점심을 먹을겸 산책도 할겸

밖으로 나와 스타벅스에 가서 또 글을 쓴다.

네 시쯤 되면 저녁으로 먹을 샌드위치나 김밥을 사 가지고 호텔로 돌아온다.

어쩌면 집에서 보다 더 단조로운 일상을 서귀포에서 보내고 있다.

삼 년 째 같은 곳에 오다보니 이제 이 곳은 내게 낯선 여행지가 아니라 전에 살던 익숙한 동네 느낌이다. 

바다만 뚝 떼서 캐리어에 넣어갈 수 있다면 우리 동네에서도 똑같은 일상을 지내기가 즐거울지도 모르겠다.

자구리공원 새섬공원 칠십리공원 이중섭 거리를 잇는 작가의 산책길

다*이네김밥 만*반미 매일올레시장 그 옆에 있는 스타벅스 올레점을 거의 매일 한 번씩 간다.

그래도 여전히 헷갈리는 방향감각 때문에 숙소로 돌아올 때에는 네이버지도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고 올레여행자 센터가 가까이 있는 건 알겠는데 어느쪽 방향으로 가야할지는 다시 지도를 켜야 할 것 같다.


오늘은 새섬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아침부터 날이 흐리다.

천지연폭포 주차장을 지나 새연교를 건너 새섬에 들어섰는데 평일이라서인지 여덟시가 다 된 시각인데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주변은 아직 어둑하고 지나가는 사람은 없고, 혹자는 그런 상황에 사람이 있으면 그게 더 무섭지 않느냐고 하지만 어쨌든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걸음이 빨라졌다.

와치에서 두 번째 알림이 울렸다.


   

두 번째 스프린트, 킬로미터당 구 분 이십 초.



오마이갓! 

누가 보면 개 한테라도 쫓기는 줄 알겠다.

명색이 산책이라면서 음악도 듣고 풍경 좋은 곳에서는 대충 바위에 걸터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멍도 때리면서 여유를 만끽하면 좀 좋은가.

사실 집에서도 매일 걸을 때마다 이것은 산책인가 운동인가, 가 애매하다고는 생각했다.

와치에 의하면 나의 일 킬로미터 평균 속도는 약 십삼 분 정도다.

날이 춥거나 어둡거나 처음 가보는 길을 걸을 때는 십일 분 정도

중간에 사진을 찍거나 딴 생각을 하느라 가던 길을 지나쳤다 돌아 올 때는 십사 분에서 십오 분이 걸릴 때도 있다. 

신기한 건, K와 걸을 때는 늘 그가 약 세 걸음 쯤 앞 서 걸어서 그렇지 보폭은 비슷한 것 같고 단추와 걸을 때에도 그 속도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빨리 걸어서 단추 걸음이 빨라진 건지

단추에게 맞추다 보니 내 걸음도 덩달아 빨라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단추는 셋이 함께 산책을 나설 때면 아파트 일 층 출입문을 나서기 무섭게 냅다 달릴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자기가 마치 말이라도 된 줄 아는지 왜 이렇게 못 따라 오냐며 채근을 하는 듯 휙 뒤돌아 보기도 한다.

모른다고 했지만 고백하자면 단추의 속보는 나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아가 단추는 집 밖이 무서워서 산책을 거부했었다.

나는 좀 잘해보려고 산책도 시키고 훈련도 시키고 잘못된 버릇이 들까봐 책도 보고 유투브도 찾아보면서 나름 노력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집 밖에만 나오면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날잡아 잡수 하는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고 몸까지 바들바들 떨었다. 

그럼에도 나의 인내와 헌신(?)으로 차츰 조금씩 산책 거리가 늘어 났을 무렵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개를 산책 시키는 김에 나도 운동을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마치 다리가 다섯 개인것처럼 코를 땅에 박고 걷는 단추와 걷는 건 

한 걸음가서 쉬고 두걸음 가서 멈추는 행동의 반복일 뿐이었다.

개 산책 핑계로 사람이 집 밖으로 나가는 데 까지는 성공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하여 한동안 내 운동과 단추 산책을 따로 했었다.

시간이 갈수록 단추 산책을 하고 와서 다시 운동하러 나가기가 귀찮아졌다.

그 때부터 였던 것 같다.

단추와 산책을 하면서 내가 걸음을 빨리하기 시작했던 것이.

의외로 단추는 힘도 안 들이고 총총 잘 따라왔다.

처음엔 따라왔는데 어느시점 부터인가는 제가 앞서 걷는다.



K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같이 걸을 땐 나보다 빨리 걸으려고 하고 시간약속이 있으면 삼십 분쯤 미리 간다.

다음 주에 있을 수업 가방을 미리 싸 놓는가 하면 따뜻하게 먹어야할 계란말이를 미리해서 냉장고에 넣어두기도 한다. 아직 짐을 다 싸지도 않았는데 캐리어 먼저 차에 실을까? 는 여행 때마다 하는 단골멘트다.


“뭐가 그리 급해. 가만 좀 있어봐 아우 정신없어.”


K에게 하던 말을 오늘 아침에는 내가 내게 했다.


“뭐가 그리 급해. 주변도 둘러보면서 노래도 흥얼거리면서 좀 천천히 걷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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