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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Nov 27. 2023

분명히 넣어뒀는데


살다보면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알게 되는 게 있다.

‘분명히’라고 하는 말은 대부분 분명하지 않고

‘솔직히’라고 하는 말은 대개 솔직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맹세코’라는 말을 강한 어조로 말 앞에 붙일 때는 어쩐지 그 말을 믿으면 안 될 것 같고

‘진짜’라는 말을 길게 지이인짜 라고 길게 늘일수록 웬지 거짓일 것 같은 확신이 선다.


M사 세탁기가 다 좋은데 동작 시간이 너무 길다는게 흠이다.

세탁기 뿐 아니라 건조기도 그렇다.

하여 두 식구 세탁물을 모아 세탁기를 가동하는 날은 세탁과 건조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해서 아침 밥 먹기 전부터 시작한 것이 저녁 때까지 이어지고는 한다.

그러다 중간에 외출이라도 할 일이 생기면 채 건조기에 넣지 못한 빨래가 하루를 묵는 경우도 왕왕 있다.

세탁을 세탁기가 하지 네가 하니? 라는 말은 틀렸다.

집중하지 않으면 짝을 잃은 양말이 제짝이 나올 때까지 이리저리 채이고

합성섬유와 면소재 빨래를 구분해야 고르게 건조가 되며 

땀이 밴 옷과 외출복을 소재가 같다고 해서 같이 넣어도 안 되고 

흰 옷과 색깔있는 옷을 한 번에 세탁기에 넣으면 안 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제대로 하려면, 어쩌면 요리보다 세탁이 훨씬 까다롭고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 어려운걸 내가 담당하고 있다는 걸 K는 알려나 모르겠다.

세탁을 하는 날에는 흰빨래 한 차례, 운동복, 속옷 양말등 차례대로 접어서 K의 방에 놓아둔다. 그러면 그는 양말이 좀 덜 마른 것 같다는 둥, 러닝셔츠가 준 것 같다는 둥 한두 차례 컴플레인을 하고는 자기 편리한 곳에 정리한다.

그런데 그 날은 안 그래도 큰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는 방에서 나오며 바지가 없다고 한다.


“뭔 바지?”

“작년에 운동복 바지를 회색하고 남색 두 개 샀는데 남색이 아무리 찾아도 없네?”

“글쎄, 그게 어디로 갔으려나.”


사실 그렇게 궁금하지도 않아 대충 변죽만 맞췄다.


“내가 오래 입었던 바지는 버리고 그건 분~~명히 잘 넣어뒀는데...”


그러더니 다시 방으로 들어가 한참 있더니 오래 입어서 버렸다는 그 바지를 들고 나온다.


“아! 내가 이걸 버린다고 하고는 그걸 버렸나보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건조가 끝났다는 부저가 울렸다.

마른 빨래를 꺼내고 세탁기에 대기하던 면소재 흰빨래를 옮겨 넣었다.

건조되어 나온 것들은 색깔있는 면소재 의류로 분류했던 것이었다.

옷을 개서 K방에 갖다 놓고 얼마 후, 나는 집 안에 유전이라도 터진 줄 알았다. 


“와아! 이게 여기 있었네!”


바지 하나가 뭐라고 좀 전까지 나라를 잃은 표정이었던 K가 얼굴 가득 화색을 띠며 방금 들여다 놓은 트레이닝 바지 하나를 들고 나온다. 


“이거 였어 이거.”


내 앞에 펼쳐 보여주는, 분명히 잘 넣어뒀다던 그 바지도 이미 무릎 부분이 변색 된 것이 상태가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어쩐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먹는 것에 대한 취향은 서로 다르지만 입을 것에 대한 관심은 둘이 비슷한 것 같다.

관심이 없으니 트렌드를 알 리가 없다. 트렌드는 커녕 내게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것이 거의 고문수준이다.

그렇다보니 백화점에 가도 정식 매장은 스쳐지나가고 행사매장에 오래 머문다.

비싼 옷이 없음은 물론이고 한 때 K는 O팩토리에 꽂혀서 계획했던 옷이 아닌데도 

‘싸니까 안 사면 손해’라며 옷을 사들인 적이 있었다.

그 무렵 근처에 사는 직원 부부와의 식사자리에서 직원의 아내가 K의 옷을 보더니 대뜸


“어머! O팩토리에서 샀죠? 호호”


라며 알은체를 한다.

모두 웃었는데 나는 웃지 못했다.

문득 어디선가 들었던, 입성이 좋아야 대접받는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다음부터 K에게 그 곳에는 가지 말라고 했다.

그 매장 옷이 품질이 나쁘다거나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다.

신혼 초, 백화점에 갔을 때 만원에 네 장이라는 와이셔츠를 사는 내게 시어머니는, 


“나 같으면 만 원 주고 좋은 걸 한 장 사겠다.”


고 하셨었다. 어머니는 천원에 한 무더기 주는 사과보다 한 개에 천원을 주더라도 좋은 사과를 사서 자식들에게 먹였다고 했다.

단순한 생활방식의 차이 일수도 있겠지만

삼십 년도 지난 지금 나는 새삼 

돈 몇 푼보다 사람을 먼저 귀히 여기는 어머니의 깊은 마음으로 읽힌다.

요즘 들어 부쩍 K에게 오래된 옷은 좀 버리라고 잔소리를 한다.

이제야 내가 어머니 마음을 닮아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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