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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Nov 25. 2023

그래도 난 아직 겨울이 좋아



“내가, 추위를 더 타는 것 같아? 더위를 더 타는 것 같아?”


잠시 생각하던 K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추위를 더 타지.”


아직 겨울이라기에는 이른 것 같은데 날은 겨울보다 춥게 느껴졌다.

집 안에서 맨발에 닿는 바닥이 차갑게 느껴질 때 쯤 난방을 시작하고는 했는데 김장도 하기 전에 벌써 발이 시려서 난방도 켜고 온수매트 보일러도 꺼냈다.

파란만장한 K의 군대 얘기는 훈련소 입대 시기부터 였다.

일부러 시기를 맞춘 것이 칠 월 복 중이었다고 했다.


“아니 왜 그렇게 더울 때로 했어? 좀 선선할 때 갔으면 훈련받기 덜 힘들잖아.”

“훈련이 덜 힘들 때가 어디있어. 그래도 추운 것 보다는 더운 게 낫지.”

“.....??”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내 동의와 상관없이 당사자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고 게다가 무려 사십 년 전 얘기라 무의미 한 줄 알면서도 혼자말처럼 다시 물었다.


“추우면 옷이라도 껴입지, 더울 땐 옷을 벗는데도 한계가 있고 어떻게 할 방법이 없지 않나?”

“옷을 껴입어도 껴입어도 해결 할 수 없는 추위가 있어. 겪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마쇼.”

“......”


말인 즉 맞는 말이다. 군대를 가 본 적 없으니 강원도의 겨울 칼바람을 내가 알 리가 없다.

게다가 이불 속에서 발이 슬쩍 스쳤을 때 얼음장처럼 차가운 그의 발에 화들짝 놀라기도 여러번이었고 운전하면서 자동기어 핸들 위에 올려져 있는 그의 손위에 장난스레 손을 포개다가 


“손이 와이리 차급노?”


라며 새삼 놀랄 때도 많다.

반면 내 경우, 이불을 목까지 끌어 덮어도 발은 밖으로 내어 놓아야 하고 

멜로 영화의 단골 대사인 ‘손이 참 차네요.’ 라며 남자의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어주는 로맨틱한 장면은 꿈도 꿀 수 없다.

손이 따뜻한 사람은 마음도 따뜻하대, 라며 근거없이 우겨보지만 나는 아무래도 여름보다는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지난 봄, K는 5월까지 온수매트를 켜고 잤다. 한 여름에 K의 방에서 수면 양말을 본 적도 있다.

겨울에 신던 것을 아직 안 치웠었나? 했는데 발이 시려서 꺼낸 거라고 했다.

참 별나다 싶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퍼즐이 맞춰진다.

K는 국물있는 식사를 좋아하고 나는 구이나 볶음 등 국물없는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나는 음식이 든 뜨거운 그릇을 잘 잡지 못하는데 K는 얼굴도 찡그리지 않고 집어서 옮긴다.

오래 전에 봤던 사주에서 나는 될수록 물과 가까운 곳이면서 저층에 사는게 좋다고 했는데 K는 가능한한 햇볕 잘 드는 고층에 사는게 좋은 사주라고 했다.

실제로는 내가 전망좋고 볕 잘드는 남향집을 노래했던 것과 달리 K는, ‘사람은 모름지기 땅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며 저층을 선호한다고 했다. 



삼 년전에, 꿈꾸던 남향집(해는 잘 들면서 저층인)으로 이사를 온 후 나는 거실 끝까지 들어오는 햇볕이 좋아서 해를 따라 소파며 식탁을 옮겨 다녔다.

올해도 어김없이 해를 따라 거실 창가로 식탁을 옮겼는데 해가 가장 잘 들어오는 시간에 나는 식탁에 앉아서 일본어 공부도 하고 책도 보고 커피도 마신다.

K의 취향은 달랐나보다.

해가 드는 시간에 점심을 먹으려면 한사코 블라인드를 내린다.

낮잠을 자는 시간에 K 방은 굴속처럼 어둡다.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다 아는 게 아니었고

왜 내 말을 안 들어줄까 마음이 상했지만 그가 좋아하는 것이 따로 있었을 뿐이었다.

여름에는 생일도 있고 과일도 많고 겨울에 추위도 타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겨울이 좋다.

내가 만약 군대에 간다면 겨울에 간다고 신청할 거다.

훈련하다보면 땀도 나니까 여름보다 낫지 않은가? 

아닌가?

어차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말을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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