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걸어오는 중이었다.
한 겨울에 이어지는 영하 이십 도에 가까운 날씨보다 갑자기 뚝 떨어진 영하 십 도가 더 견디기 힘들다.
요가복 위에 두꺼운 롱패딩을 입고 맨 발에 어그부츠를 신었더니 얼굴이 시려서 고개를 푹 숙이고 종종걸음을 했다.
저 쪽에서 K가 비슷한 착장을 하고 이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늦은 시각이라 와이프가 걱정돼서 나왔나 싶어 반가움도 잠시, 잠깐 이 쪽으로 와 보라며 앞장을 선다.
어금니가 딱딱 부딪힐 만큼 추워 빨리 집에 들어가면 좋겠구만 왜 저러나 싶어 짜증이 슬쩍 올라왔지만 마지못해 뒤를 따라 갔다.
대충 감은 있었지만 역시나 쓰레기장 옆 폐가구를 내어 놓는 공터에 멈춘다.
“이 거 어때? 엄청 멀쩡해.”
멀리서 봤을 때는 얼핏 랩핑한 어린이 책상처럼 보여, 절대 안 된다고 해야지, 라고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 보니 폭은 약간 좁으면서 길이는 보통 책상보다 긴, 한 눈에 봐도 공장제품이 아니라 주문 제작한 원목책상처럼 보였다.
그래도 그런 물건을 버렸을 때는 그럴만한 하자가 있겠지 싶어 어떻게 K를 포기시키나 곰곰 생각하고 있었다.
“길이가 꽤 길어 보이는데 놓을 자리가 되겠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K는 바로 주머니에서 줄자를 꺼내 길이를 잰다.
“160이야, 청소기 빼고 서랍장 조금 옮기면 딱 맞을 것 같은데?”
‘엇! 이 사람 진심이네?’
마땅히 말릴 만한 말도 떠오르지 않고 날도 너무 추워서 일단 그러자고 했다.
불과 아파트 모퉁이 하나 돌아 엘리베이터에 싣기 까지만 열 번은 쉬다 옮기다 한 끝에 집 안으로 들여놓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언제 했는지, 청소기 스탠드는 빼고 주워온 책상은 이미 자리를 잡았으며
쓰던 책상에는 버려진 책상에 붙었던 폐기물 스티커까지 옮겨 붙이고 현관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사실 그 책상은 큰 아이 초등학교 때 사 준 것이었다.
전에 살던 집에는 아이들 각각 방이 있었는데 딸이 쓰던 방은 내가 서재로 쓰고
아들이 쓰던 방은 K가 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아들의 책상을 쓰게 된 셈이다.
그 무렵 내게는 이미 엔틱한 느낌의 책상과 의자 세트가 있었다.
수필 등단을 했을 때 K가 사 준 것이었다.
(사실상 내 카드로 샀으나 명분을 그렇게 두니 어쩐지 존중받는 기분이라 그렇게 말하기를 좋아 한다.)
큰아이 두 돌 무렵 식탁으로 쓰던 테이블을 작은 방으로 넣어 의자를 놓았었다.
그 때만해도 나는 큰아이 키우면서 둘째를 임신 중이었으니 책상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었고
K는 한창 일도 바빴지만 퇴근후 사회생활이 더 바빴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집에 오셨을 때 아이가 의자위에서 놀다가 배변 실수를 했다.
그런데 어머니의 갑작스런 반응에 잠시 얼떨떨해졌다.
“아버지 공부하는 책상에다 쉬를 하면 어쩌냐!”
“.....??”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K가 그 곳에 앉아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이사를 여러번 하는 동안 그 책상이 언제쯤 없어졌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서 각각 책상이 생겼다.
전에 살던 집 인테리어를 하면서 책상자리에 콘센트 필요하지 않느냐는 업체 직원의 말에
딸은, ‘필요 없어요. 전 이제 공부 안 해요.’ 라며 쿨하게 책상을 포기했고
별 말 없던 아들의 책상은 남편차지가 되었다.
나 역시 어렸을 때 내 책상을 가졌던 적은 없다.
생애 첫 책상은 마흔이 넘어 좋은 글 쓰라며 남편이 사 준 것이었는데
그걸 십 년쯤 쓰다가 좁은 집으로 이사를 오느라 당근에 팔아버렸다.(아, 내가 왜 그랬을까.)
결국 가족 중 K만 한 번도 자기 책상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셈이 됐다.
창가 쪽 청소기가 있던 공간을 꽉채우고 서랍장과 폭 차이가 크게 나지 않게 나란히 놓인 책상은 의외로 잘 정돈 돼 보였다.
중문 앞에 놓인 헌책상을 보면서 나는 아들 책상이 버려지는 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찡했으나 K는 그 아침에 손이 시려운 줄도 모르고 밖으로 내어 놓고 낮에는 수거업체가 와서 실어가는 데까지 일사천리다.
이 추운 날씨에 다이소를 두 번이나 왔다갔다 하며 서랍 파티션을 사서 정리하는 K의
신나보이는 모습이 어쩐지 짠하게 보였다.
새 책상을 사주려냐고 물으면 물으나마나, ‘내가 책상이 뭐 필요해.‘ 라고 말할 것이 뻔하다.
누가 쓰던 물건이기는 마찬가지인데 주워온 책상을 흡족해 하는 K를 보면서
그래, 새책상이면 뭐해 마음에 드는 내 책상이 생겼으면 됐지.
라고 미안한 마음을 추슬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