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자 어디갔어?”
“......?”
단추와 산책을 나가려다 K가 물었다.
“놔둔 자리에 있것지. 모자가 발이 달렸겠어?”
애초에 내가 알 거라는 기대도 없었다는 듯 다시 방으로 들어가며 툭
“발이 달린 모자를 아직 못 본 모양이군.”
한다.
늘 진지한 표정에 목소리까지 저음이라 그가 하는 농담은 농담으로 들리지 않을 때가 많다.
이 부분에서 역시 잠시 멈칫했다.
‘모자? 발? 웃어야 되는 건가?’
모처럼 신박한 농담을 했다고 생각하는 듯 의기양양한 뒤태로 문을 나서는 그가 모자를 찾아 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후 좋아하는 작가의 산문집에서 비슷한 말이 또 나왔다.
가장 좋아하는 필기구는? 라는 챕터에서 그는 명품 만년필을 몇 번씩이나 잃어버린 적도 있고 무심히 건네받은, 행사 문구가 적힌 볼펜을 유용하게 사용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상의 모든 펜에는 발이 달려있지 않은가.’ 라고 적었다.
발 달린 모자보다는 한결 공감이 됐다.
내 경우는 펜을 잃어버리기 보다는 길에서 주는 판촉용 펜이나 선물로 받은 펜 심지어 손글씨 쓰기는 싫어하면서도 여행을 할 때마다 연필욕심이 많아 보는 족족 사들인 것들까지 집 안에 펜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다.
한 번씩 정리를 한답시고 다 꺼내서 잘 나오는지 고정장치가 고장나지는 않았는지를 확인해서 과감히 버릴 결심을 해보기도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십 년도 더 된 펜조차 멀쩡하다.
결국은 다시 모아 연필꽂이에 꽂아 두기를 몇 번인지.
지금도 책상 한 편에 놓여있는 문구용품을 모아놓은 함을 보면서 한 쪽 끝 두 칸을 빽빽이 채우고 있는 저 펜들을 또 한 번 뒤집어서 정리를 해야하나 마음이 들썩이고 있다.
왜 남들 펜에는 달려있다는 발이 내 펜들에는 없는 걸까.
정작 내 물건들 중 발은 다른 데 달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눈이 오는 아침에 산책을 명분으로 걷기운동을 나갔다.
겨울이 좋은 점 중 하나가 옷 입기다.
안의 옷 대충 입고도 롱패딩 하나 걸치면 어디든 갈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 감지 않은 머리는 야구모자로 가리고 패딩하나 걸치고 나서는 나에 비해 K의 착장은 완전무장 수준이다.
패딩은 기본 마스크워머에 귀마개 장갑에 방한양말과 방한화까지
금방이라도 겨울 행군을 나서도 끄떡없을 차림새다.
“이거 하나 줄까?”
입과 코를 가린 마스크워머를 가리키며 K가 묻는다.
새로 사주면 몰라도 쓰던걸 어떻게 쓰냐며 됐다고 했다.
장갑은 왜 안 끼냐고 그가 또 물었다.
어디다 뒀는지 너무 잘 둬서 못찾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겨울에 장갑을, 그것도 나이든 사람들이 반드시 껴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장황한 설명이 늘어진다.
이렇게 하고 다니면 손 안 시리다며 패딩 소매를 쑥 끌어내려 손은 안 보이고 덜렁거리는 소매끝을 흔들어 보여주니 어이없다는 듯 헐헐 웃었다.
그런데 이상하긴 하다.
벨트 모자 스카프 등산양말 겨울 내의에 레깅스까지 지퍼백에 넣어 차곡차곡 완벽하게 정리해 뒀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장갑은 없다.
아무래도 잘 둬도 너어무 잘 둔 게 문제인 것 같다.
아니면 장갑에 발이 달렸거나.
낮에 들른 멕시코 식당에서 크리스마스라며 사탕꾸러미 선물을 줬다.
저녁 무렵 왜 성당에 나오지 않느냐며 반장이 성탄 떡이라며 또 선물을 줬다.
교회에는 가지도 않으면서 크리스마스는 좋다.
발은 시간에도 달려있는 모양이다.
시간에 달려있는 발은 심지어 엄청 빠르기까지 하다.
많이도 말고 조금만, 아주 조금만 천천히 가면 좋겠다.